[신간] "대단히 공들여 잘 쓴 책" 『우리 동학』
"대단히 공들여 잘 쓴 책" 『우리 동학』
(한국콘텐츠연구원 심지훈 지음, 경상북도 발간, 비매품)
1.
점심무렵 회사 경리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세 지긋하신 분이 <우리 동학>을 그렇게 칭찬을 하더라면서. 한참 동안 대화를 했단다. 어르신은 <우리 동학>을 읽기 전에는 별 기대를 안 했단다. 어르신은 웬만한 동학 서적은 다 읽어본 터였고, 시중에 나온 책들은 거기서 거기였던지라 <우리 동학>도 그렇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읽었단다. 다 읽고나서는 두 가지에 놀랐다고 한다. 첫 번째는 "어떻게 이 책을 서른일곱 살 젊은이가 썼느냐"하고 놀랐고, 두 번째는 "동학을 이렇게 심도 있고 공정하게 쓴 책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놀랐단다.
2.
경리부장과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 동학>을 끝까지 읽어낸 대중이 100명만 돼도 지금쯤 '출판사 경상북도'는 성원과 협박의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게 당연하다고.
성원이라 함은 이런 훌륭한 책을 도민들에게 무상으로 보급해줘서 고맙고 애썼다는 것이고, 협박이라 함은 이런 훌륭한 책을 왜 더 많이 배부하지 않느냐는 성화겠다.
3.
어르신이 놀라워한 두 가지 점은 실은 하나이면서 두 개다. 우선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심도 있고, 공정하게 쓴 동학책'이란 점은 거꾸로 <우리 동학>을 쓰기 위해 논문 100여편과 대중서 50여권을 읽어내면서 내가 놀라워했던 일이다. 나는 대중서라 하더라도 교수들과 여행자들이 쓴 대동소이한 동학 책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동학 이야기를 쓸 궁리를 먼저해야 했다. 어르신이 <우리 동학>을 정독하고 놀라워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첫 번째 "어떻게 서른일곱 살 젊은이가 이 책을 썼느냐"고 놀랐다는 어르신의 말씀은 두 번째 이유와 맥을 같이 한다. 하나 작가인 내 입장에서는 서른일곱 살 작가를 '얼라' 취급하는 어르신의 말씀에 동의하기 힘들다.
4.
37세에 일을 낸 사람은 적지 않다. 먼저 동학 교조 최제우가 동학을 창도한 게 37세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37세에 최연소 지자체단체장이 됐다. 왕양명이 새로운 유교 '양명학'을 창시한 것도 37세 때였다. 체코 신부 얀 후스(Jan Hus)가 명문 프라하대학 총장에 오른 것도 37세 때였고, 다카하마 교시는 식민지 조선을 답사하고, 당대 일본인과 조선인의 삶을 그린 소설 <조선>을 37세 때 썼다. 그밖에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교조 최제우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게 37세 때였고, 흥미롭게도 3대 교주 손병희가 2대 교주 최시형으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은 것 역시 37세 때였다.
5.
<우리 동학> 작가 입장에서 대중들이 <우리 동학>을 보고 놀라워할 점은 따로 있다. <우리 동학>은 동학을 사상, 철학, 종교, 이념의 틀로 바라보지 않고, '집밥 백선생' 같은 당대를 호령한 '문화'로 바라본 최초의 시도라는 사실이다. 더불어 이제까지 익숙하게 알려져온 전라도, 충청도 동학이 아니라 경북의 동학 사상지, 혁명지에 대한 이야기를 총망라한 첫 시도라는 점이다. 어르신은 아마도 이런 시도를 공평하고, 심도 있게 써내려 간 것에 놀라워한 것이 아닌가 한다.
6.
경북은 어느 지역보다 동학의 중추가 되는 곳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적 뿌리였던 동학이 경주 산중에서 탄생(1860)했고, 도인이 급증하자 조직적인 관리를 위해 도입한 접주제는 포항에서 시작(1862)되었다.
삿된 도를 폈다는 이유로 효수형에 처해진 교조 최제우의 순도지는 대구(1864)고, 이후 동학을 체계화하고, 저변을 다진 곳이 포항 영덕 영양 울진 등 경북동북부지역이다.
또 동학도가 중심이 된 최초의 동학농민혁명이 영해에서 일어(1871)났고, 신분차별을 넘어 여성우위시대를 예견한 ‘내수도문’은 김천에서 반포(1890)됐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과 최초로 접전을 벌인 곳이 예천(1894)이고, 동학농민혁명 국면에서 일제처럼 병참기지를 마련하고 활용한 곳이 문경이다.
또 동학농민군의 투쟁이 본격적인 항일의병운동으로 전개된 곳이 안동이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이후 ‘포스트 동학’을 재건하고 이끌어간 곳이 상주(1915)다.
7.
나는 <우리 동학>을 정신문화의 고장, 동학의 발상지 경북에서 새롭게 조명받는 시대가 꼭 한 번은 와야 한다는 신념 아래 썼다. 동학은 왜 탄생했고, 동학농민혁명 국면에서 농민들은 왜 그토록 동학에 열렬하게 호응했는가. 나는 그 해답은 경북에서 찾을 수 있고, 찾아야 한다고 봤다. 이 막되 먹은 시대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동학이 기적처럼 천명한 '인내천(人乃天)'과 동학농민군들이 지향했던 '인간다운 삶'의 이정표들-유무상자, 불연기연 같은-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자유, 평등의 기원을 이 땅에서 찾으려면 동학에서 찾아야 하고, 근대로 나아간 문을 찾아 들어가려면 동학농민혁명사를 더듬어야 하는 건 불가피하다. 어떻게 얻은 평등이고, 어떻게 연 근대인데...! 우린 지금 이 꼴인가!
8.
이 작업은 경상북도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모든 공은 경상북도가 갖는 게 옳다. 하나 작가로서 <우리 동학>이 창고에 처박힌다면, 참으로 애석한 일이겠기에 열혈 독자 한 분의 사연을 빌어 이렇게 '신간 안내'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을 읽고 '책을 받아보고 싶다'는 대중에게 줄 여분의 책은 현재로선 그리 많지 않다. 이미 충분히 소진<기사 참고>됐고, 내년 경북지역 동학 탐방 행사에 쓸 여분을 따로 보관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9.
동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이었던 백암 박은식, 우리 민족의 영원한 참스승 단재 신채호, 한국이 낳은 천재 사상가 범부 김정설 등이 그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 애썼다. 현대에 와서는 시인 김지하, 대중철학자 도올 김용옥, 생명운동사상가 무위당 장일순 등이 동학 문화를 기가 막힌 문화라고 보았다.
10.
그럼에도 왜 우리는 동학에 무관심한가. 동학은 서양종교에 비해 어렵기 때문이다. 그걸 쉽게 풀어 안내한 것이 <우리 동학>이기도 하다.
나는 경상북도가 발행한 <우리 동학>이 유래없는 도민들의 성원과 '협박'에 힘입어 2쇄, 3쇄, 4쇄 발행되는 진기록을 쓰게 되기를 고대한다.
/<우리 동학> 저자 심지훈 2015.12.28
@한국일보 2015.12.18일자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