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窓] 미래 상상(엠플러스한국 6월호)
시사에세이
미래 상상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나는 종종 신문을 부러 미뤄 본다. 일주일 치를 하루 동안 보기도 하고, 한 달 치를 하루 동안 보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일련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관련 기사를 쏙쏙 뽑아 스크랩 할 수 있어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다.
한국일보 등 4월 한 달 치 신문을 몰아 봤다. 유독 ‘미래’란 키워드가 반짝거렸다. “앞으로 귀찮은 일은 로봇에 맡기고 인간은 여유로운 삶을 즐기게 될 것”(이시구로 히로시 교수, 2017년 4월 14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니 이런 미래가 상상됐다.
일본의 안드로이드 1인자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 당시 이시구로 교수는 해외출장 중이었고, 자신과 똑 닮은 로봇 ‘제미노이드’가 그 대신 강의해 화제를 모았다. 그의 기술이, 아니 그의 ‘제미노이드’가 이제 사회 전 분야에 일상적으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은 출근길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 자동차 대신 천로차(天路車·하늘을 날아다니는 차)를 이용한다. 이제 사람들은 출근길을 더 이상 지옥길이라 여기지 않고, 그저 레저활동쯤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 수도권에 사는 37만 명의 출근·등굣길이 평균 2시간이 넘는다’는 기사는 역사교과서에나 볼 수 있다.
국내 카풀 중개 애플리케이션 회사들은 그 서비스 기반을 자동차에서 천로차로 전환했다. 이 서비스 이용객들은 자동차 기준 월 30만원을 지불하던 카풀료를, 월 100만원을 지불하면서도 만족해하고 있다. 왜? 레저비용에 불과하니까.
이미 우리 사회는 1인 가구가 보편화된 지 오래이며, 전통적인 가족(family) 대신 나홀로족(All By Myself)이 그 지위를 획득했다. 이는 20~40대는 물론 60~80대 1인 가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한국 대학의 등록금은 예나 지금이나 비싼 것으로 악명 높지만, 대학들이 학문에 뜻이 있는 이들만을 수용하고, 그들에게 진정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학기에 몇몇 대학들이 도입해 문제가 됐던 휴대폰 인증 전자출석부의 폐단들, 예컨대 출석했지만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 이유로 결석처리가 된다든지, 휴대폰 전자출석 앱 자체의 오류로 미처리됐던 것들은 ‘제미노이드’의 등장으로 말끔히 해소됐다.
그런가 하면 외국인들이 보기에 여전히 난센스로 남아 있는 문제가 있다. ‘청첩장을 돌리며 식사 대접으로 등골 휜다’는 예비 신혼부부들의 불평은 볼멘소리를 넘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점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조기축구 동호회는 나날이 늘어 가십기사 수준이었던 ‘인터넷상의 동호회 비용 분담 사기사건’이 일선 경찰서 전담업무가 됐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살면서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4명 중 1명꼴이었다”고 보도한 2017년 4월의 기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아! 옛날이여’하고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최근 보건복지부의 같은 조사에서 무려 ‘10명 중 7명꼴로 정신질환을 경험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통령실 직속 인간성회복실천운동본부는 이웃, 친지에게 손편지쓰기운동을 적극 권장하고 나섰다. 그 홍보자료 중에는 ‘어느 야쿠르트 아줌마가 판매왕이 된 비결은 다름 아닌 감사의 손편지였다’는 해묵은 기사도 끼어있다.
지금은 낯설기만 한 ‘미래 상상’. 우리는 이 일에 빠른 속도로 익숙해질 것 같다. 쏜살같은 미래, 득달같은 그 다음 미래가 그렇게 만들 것 같다. 미래부 주관의 ‘제1회 미래상상대회’가 선연하다.
*이 글은 대구한국일보가 발행하는 월간문화잡지 <엠플러스한국> 6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