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窓] 시민기자의 밤(엠플러스한국 7월호)
시사에세이
시민기자의 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한국일보는 지난해 1월 4일자(2면)에서 “지역 취재 활동 강화를 위해” 유명상 대구경북취재본부장을 대구한국일보 대표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두 달 뒤인 3월 10일 유명상 호는 출정식(=출범식)을 열고 닻을 올려 항해를 시작했다. 대한민국 언론사에서 이적(異跡)의 자취로 능히 기록될 일이지만, 이적이란 이유로, 또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대구한국일보가 그저 이적으로 남을지, 언론의 기린아로 남을지는 애오라지 대구한국일보 하기에 달렸다.
대구한국일보 대표 유명상은 발 빠르게 체제를 정비해 갔다. 탄탄한 경영체계 구축과 함께 지면 강화 방안을 모색해 나갔다.
항해 1년 뒤인 올 1월 초, 유명상은 가슴팍서 만지작대던 카드 하나를 빼들었다.
“대구한국일보 시민기자 시작합시다. 그냥 시민기자 하지 말고 남들이 못하는 시민기자 합시다. 시민기자 3,000인 양성운동을 시작합시다!”
‘세상에나 시민기자 3,000인 양성운동이라니!’
유 대표의 선언은 맹랑하게 들렸지만 미래는 그 누구도 예단하기 힘든 일인고로, 대구한국일보 ‘시민기자의 밤’은 일단 시작됐다.
2017년 3월 29일 김성해 대구대 신방과 교수의 ‘공동체 빛과 소금, 시민기자의 존재가치’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7시~9시 현대백화점 대구점 9층 문화홀에선 온전히 대구한국일보 시민기자의 밤이 무르익어 갔다.
총 10강(20시간)이 진행되는 동안 강의 장소가 불가피하게 3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예비시민기자들의 출석률은 평균 50%대를 유지했다. 매 강좌마다 질의응답은 열띤 토론으로 바뀌기 일쑤였다. 뒤풀이 참석률이 곧 출석률인 날이 다반사였다.
시민사회에서 시민의 역할을 올곧게 해보겠다는 열정과 의지는 때론 엉뚱한 곳에서 충돌하기도 했다. 아직 기자조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기자 몇몇은 경상도 특유의 친근감 표시, 예컨대 몇 번 보면 말을 놓는 자기 편의적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하면서 직원들과 사소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안타까운 사연도 나왔다. 5강까지 100% 출석률을 보인 문순옥, 김혜민 예비시민기자는 모녀간인데, 딸 김씨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수강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후에 이 사실을 안 대구한국일보가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하자, 어머니 문씨는 “끝까지 참여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며 “딸아이가 무척 아쉬워하는데, 완쾌되면 2기 때 재수강해서 꼭 수료하겠다”고 되레 양해를 구했다.
유 대표가 말한 ‘남들이 못하는 시민기자’의 싹은 이미 수강생들이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시민기자 1기에는 모두 96명이 지원해 92명이 수강등록하고, 50명이 수료했다.
유 대표의 시민기자 3,000인 양성운동은 언제 끝날지 알 길이 없다. 지금으로선 오리무중이고, 첩첩산중이다. 그럼에도 대구한국일보 시민기자는 ‘남다른 진짜 하나’가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운영방식인데, 대외비라 더 말하기 곤란하다. 이 곤란함을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언론계 금언으로 대신하고 싶다.
시민기자 10번의 밤은 그저 숫자 10이 아니라 무한대의 ‘무수한 밤’ 같았다. 그 밤들을 함께하면서 보고 느끼며 예감한 것은 ‘아! 이 분들과는 뭔 일을 내도 내겠다’는 것이었다.
밤은 만물을 농익게 한다. 그 무수한 밤, 대구한국일보 예비시민기자는 시민기자로 영글어갔다. 이제 그들이 농사지은 잘 익은 열매를 하나씩 수확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