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窓] 이실직고(엠플러스한국 4월호)
시사에세이
이실직고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옛말에 ‘이실직고(以實直告)’라는 게 있다. 주로 수령이 죄인을 상대로 “네 이놈! 이실직고하렷다!”처럼 심문을 할 때 쓰인다. 문자 그대로 풀면 ‘사실 그대로 고함’이란 뜻이다. 사실은 엄정히 다뤄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요즘은 사극에서도 잘 쓰지 않는 말이긴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고 행하면 더없이 좋을 말이다.
최근 이실직고를 하지 않아 스승을, 동료를 황천길로 보낸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지역에서 일어났음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안타까움을 넘어 공분을 샀다. 이 사건은 부산 동아대 미술학과에서 일어난 일로 참으로 괴이쩍다. 한편의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다.
전도유망한 화가였던 A교수는 작년 따스한 봄날 날벼락을 맞았다. 그해 3월 31일부터 사흘간 경주로 스케치 수업을 다녀온 직후였다. 제자 B씨가 난데없이 대자보를 통해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며, 가해자로 A교수를 지목했다. B씨의 요지는 이랬다.
‘스케치 수업 뒤풀이 도중 누군가 여학생 1명의 속옷과 엉덩이를 더듬었는데, 범인은 바로 A교수였다.’
동아대는 진상조사에 나섰고, 범인을 색출했다. 강사 C씨였다. C씨는 바로 해임됐다. 그러나 사건은 일단락되기는커녕 A교수를 더 옥죄였다. A교수도 피해 여학생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엉뚱한 소문이 학내에 퍼진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해 4월 7일 미술학과 D교수가 솔선해서 나섰다. 피해자를 포함해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을 모아 놓고 ‘A교수는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받았다. 비로소 사건은 종결되는 듯했다.
아니었다. 진술서가 강요에 의해 작성됐다는 항명의 뜻인지 B씨는 대자보를 다시 게재했다. A교수는 치욕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유족은 A교수의 결백을 밝혀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조사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자를 성추행한 사람은 A교수를 도우려 진술서 확보에 나선 D교수였던 것이다. D교수의 본심은 자신의 범행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A교수를 이용해 피해 여학생의 입을 막으려했던 것이다. D교수의 보복이 두려워 말을 아끼던 피해 여학생은 결국 지난해 10월 학교 측에 이실직고했다. 동아대는 지난달 3일 D교수를 파면했다.
그럼 B씨는 왜 다시 대자보를 걸었을까. 경찰조사에서 B씨는 “사실 자신은 A교수를 잘 알지 못하지만, 당시 미술학과 E교수가 수차례에 걸쳐 ‘A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밝혀야 한다. 네가 진상조사를 하라’며 지시했다”고 말했다.
헌데 어처구니없게도 진상조사를 촉구한 이 E교수 역시 지난해 4월 한 시간강사를 성추행했다는 투서가 총장 비서실에 접수돼 내부 감사를 받는 중이었다.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었다. 동아대는 E교수에 대해서도 추가로 감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자보를 붙인 B씨에겐 졸업을 며칠 앞두고 퇴학처분이 내려졌다.(국제신문 2017.3.17일자 참고)
만약 B씨, C강사, D교수, E교수의 마음 한켠에 일찍부터 이실직고의 중요함이 자리했더라면, A교수는 오명을 씻고 전도유망한 화가로, 훌륭한 스승으로 오랫동안 제자들 곁을 지켰을지 모른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방안(Ⅲ)’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성인 남녀 3,669명을 대상으로 포용, 신뢰, 희망, 협조, 역동성 등 5가지 항목에 대한 사회통합도를 조사했더니, 10점 만점에 평균 4.18점이 나왔다. 한국일보는 이를 낙제점 수준이라고 분석했다.(한국일보 2017.3.16일자)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실을 곧이곧대로 전달하는 습관만 잘 길러도 우리사회 통합도는 급상승할 텐데. 정직이야말로 사회통합의 첩경일 텐데. 그러면 제자가 스승을, 동료가 동료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비극은 없을 텐데….
*이 글은 대구한국일보가 발행하는 월간문화잡지 <엠플러스한국> 4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