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窓] The first 'She'(엠플러스한국 8월호)
시사에세이
The first ‘She’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The first ‘She’를 ‘첫 번째 그녀’라고 하자. 이때 first는 한정사로 형용사다. first는 부사, 명사로도 쓰인다. 부사일 땐 ‘먼저’ ‘우선’ ‘차라리’의 뜻으로 단독으로 쓰인다. 명사일 땐 ‘최초’ ‘처음’ 등의 뜻으로 주로 정관사(the) 혹은 부정관사(a, an)와 함께 쓰인다. 형용사로 쓰일 땐 ‘his first wife(그의 첫 번째 아내)’처럼 앞에서 형용사의 수식을 받는다. 그리고 first 자체가 형용사이니 이어 명사가 놓여야 구(句)가 된다. 비로소 영문법을 갖춰 활용 가능해진다.
The first ‘She’에서 ‘The’는 영문법에서 흔히 ‘정관사’라고 한다. ‘정해진 관사’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특별한 사람과 사물을 표현할 때 쓴다. 하나 네이버 영어사전을 보면 정관사의 용법은 무려 10가지나 된다. first 앞에 붙은 the는 앞서 설명했듯 품사로는 형용사다.
마지막 ‘She’가 문제다. The first ‘She’는 영문법에 비추면 콩글리쉬다. 틀린 표현이다. ‘첫 번째 그녀’라고 할 요량에 ‘그녀’를 강조하려면 The first Woman이라 해야 법에 맞는 표현이다. 다만 The first ‘She’가 ‘첫 번째 그녀’로 무난하다고 한다면, 그건 시적(詩的) 허용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하겠다.
각설하고 이번호 주제는 ‘첫 번째 그녀’다. 여기서 ‘첫 번째 그녀’란 남녀 공히 적용되는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선구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다. 오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불과 20년 전 ‘사회주부’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여권신장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 97년 4월 한국여성민우회가 ‘사회주부대회’라는 행사를 열고, ‘세상을 바꾸는데 주부들이 앞장서겠다’고 천명했다. 이후 ‘가장의 아내’를 뜻하는 주부들의 사회진출은 봇물을 이뤘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 우대 풍토는 시나브로 정착됐다. ‘첫 번째 그녀’들도 제 분야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만 강은옥(첫 여성 철도 기관사), 정나리(4년제 대학 첫 여자 총학생회장), 김송자(첫 여성 차관<노동부>), 한명숙(초대 여성부 장관), 이현주(해군 함정 첫 승선 여군), 양승숙(첫 여성 장군), 박선숙(첫 여성 청와대 대변인), 장상(첫 여성 국무총리 서리), 윤하나(첫 여성 비뇨기과 교수), 강금실(첫 여성 법무부 장관), 신혜수(유엔 첫 여성 임원), 김경임(첫 외무고시 출신 여성 대사<튀니지>), 김영란(첫 여성 대법관), 이애리사(첫 여성 태릉선수촌장), 안희현(해군 첫 여함장), 안미영(여군 첫 고속정 편대장) 등이 ‘첫 번째 그녀’에 등극했다. 모두들 ‘퍼스트 펭귄’들이다.
그럼 우리 현대사에서 ‘첫 번째 그녀’의 효시는 누구일까. 1948년 첫 여성 장관(상공부)에 오른 임영신이다. 또 우리 사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첫 번째 그녀’는 단연 가수 윤복희다. 그녀는 1967년 1월, 당시 전세계를 강타한 미니스커트 열풍을 대한민국에 상륙시킨 당사자다. 얼마나 심했으면 ‘무릎 위 15 센티미터’ 이상은 풍기문란이라는 명목으로 단속의 대상이 됐다. 경찰들은 대나무 자를 들고 다니며 여성들 다리를 대놓고 훑어보고 자를 갖다 댔다. 남성들 사이에선 “경찰이나 해볼까”라는 농담이 유행했다. 요즘 젊은 여성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며 깔깔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 우리에겐 우스개가 된 과거사가 최근 중동 사우디에선 온 나라를 발칵 뒤집은 큰 사건으로 떠올랐다. 그곳 유명 유적지 나즈드주 우샤이거 마을에서 한 여성이 미니스커트와 배꼽이 훤히 보이는 검은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동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왔다. 불과 6초짜리 이 동영상이 사우디 전체를 벌집 쑤셔 놓은 듯 뜨겁게 달궜다. 문제의 여성은 사우디 경찰에 체포됐다. 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송치됐다. 여성이 외출할 땐 머리는 검은 히잡으로 감싸고, 몸 전체는 아바야(검은 통옷)로 가려야 하는 사우디에선 그녀 복장이 ‘망조(亡兆)’로 읽혔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그녀’가 애달프고, 고달픈 건 숙명이다. 시간이 답이고 약이겠다. 나즈드주는 와바비즘(이슬람 원리주의사상)의 탄생지다.(한국일보 2017.7.20일자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