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단옷날에

스토리텔링Pro. 심지훈 2016. 6. 10. 09:15

대구한국일보(대표 유명상·왼쪽에서 4번째)9일 오전 11()한국뿌리문화보존회·한국성씨연합회(총재 황상득·왼쪽에서 5번째), 뉴스상주(대표 석민영·왼쪽에서 2번째), 화가 김산호(왼쪽에서 6번째) 선생과 문화콘텐츠 제휴협약식을 가졌다. /대구한국일보 최영민 인턴기자 tjy98123@naver.com


#단옷날에
어제(9일) 대구한국일보(대표 유명상)는 2개 기관(한국성씨총연합, 뉴스상주), 1명의 화가(만몽 김산호 선생)와 문화콘텐츠 제휴협약식을 가졌다. 


MOU 날짜를 부러 이날로 잡았다. 어제는 음력으로 5월 초닷새(5월 5일) 단오였다.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며, 남자는 씨름했다는 그 단오말이다.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이라는 그 단옷날에 대구한국일보는 도약을 위한 디딤돌을 하나 놓았다. 


단옷날은 우리에게 역동적인 힘을 불어넣는 날이었지만, 실상은 매우 애통한 날이었다. 중국에서 유래된 단오의 오리지널 버전에는 비애감이 감돈다. 


나는 협약식을 준비하면서 우리 옛 선조들이 즐긴대로 호방한 기운과 함께 비통함의 상징인 초나라 충신 굴원을 생각했다. 


사연은 기원전 300년경 전의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강대국인 진나라가 나머지 약소국인 여섯 개 나라를 압박하던 시기였다. 굴원은 내적으로는 강력한 개혁정치를, 외적으로는 나머지 여섯 개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이른바 합종(合從)책을 지지했다. 합종의 명분은 '진나라 밑에서 소꼬리가 되느니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였다.


하나 똑똑하고, 바른 소리 잘하는 충신에게는 강력한 시기 세력이 돌출하는 법. 굴원은 변방으로 쫓겨났다. 굴원은 변방에서도 나라 걱정을 했다. 결국 초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을 받고 패망했다. 


굴원은 초나라 백성들이 진나라의 폭정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다 커다란 돌덩어리를 안고 멱라강에 뛰어들어 자결했다.


이후 초나라 사람들은 음력 5월 5일이면 만두를 먹으며 '마지막 충신' 굴원을 기리기 시작했다. 단오의 유래다. 


충신은 저 세상으로 갔으되, 그의 충절스토리와 이름 두 자는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세상 똑바른 정신머리 하나로 버텨 볼만도 한 일이다 싶다.


나는 처음에 단옷날의 역동성을 생각하며 MOU 날짜를 못 박았다가, 굴원을 떠올리며 그의 주군 회왕과 경양왕도 함께 생각했다. 


내가 굴원이라면, 유명상 대표가 회왕과 경양왕이 될 것이다. 회왕과 경양왕은 간신들의 모함에 굴원을 내쳤지만, 유 대표는 아직은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우리 역사를 보면 새 물꼬를 트고, 혁신을 성공시킨 사례는 중앙이 아니라 지방이었다는 걸 심심찮게 알 수 있다. 단옷날, 대구한국일보와 맞손 잡으러 수도 서울에서만 5명, 경남 하동에서 1명이 왔다. 


이들 중 4명이 대구를 첫 방문했다. MOU 대상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성씨연합회 총재와 김산호 선생이 대구를 첫 방문한 자리였다.


<문화콘텐츠 제휴 MOU> 의미는 오는 8월말 한국일보에 풀스토리가 공개되고, 9월부터 그 성과물이 독자밥상에 올라간다.


일은 치러야 일이고, 길을 가봐야 그 끝을 알 수 있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2016.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