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훈 문화칼럼] 부채
#부채
1.
지난주 서울 출장을 갔다가 늦은밤 지하철 노점 할머니한테 3,000원 주고 부채를 하나 샀다. 남루한 차림이지만 폼새가 범상치 않았던 할머니가 늦은 시간까지 소박한 부채전廛을 펼치고 앉아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가 사온 것이다. 집에 내려와서는 연등 장식물을 부채 머리에 달고, 부채를 펼쳤다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부채에 인쇄된 글귀 때문이었다.
'지식인은 단순히 말할 때가 아니라 배운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때 고귀한 것이다.'
나는 어쩌면 그 할머니가 고수가 아닐까 생각했다. 가격으로 치면야 그저 그런 부채를 파는 할머니지만서도 실은 개판으로 굴러가는 나라 꼴, 그 꼴을 이렇게 만든 지식인이란 작자들을 향해 남은 생 부채 하나로 쓴소리를 휘휘 날리는 고수.
2.
내가 산 펼치는 부채는 접는 부채를 줄여 <접선>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단오를 기해 지방관들이 지역 유지들에게 접선의 일종인 유선을 선물하는 풍속이 있었다. 유선은 선면을 콩댐(*)하거나 들기름을 먹인 부채다.
반면 서예가 남석 이성조 선생께서 '달인대관' 넉 자를 써서 내게 준 둥근부채(사진)는 <단선>이라고 한다. 단선 중에서도 <미선>은 조류나 어류의 꼬리를 본떠 만든 것으로, 부녀자와 서민들이 주로 사용했다.
조선의 지방관들은 음력 5월 초닷새(단오)에 이른바 <부채정치>를 단행했는데, 이는 순전히 민심 관리 차원이었다. 헌데 비싼 접선은 상류층에, 좀 저렴한 단선은 하류층에 선물함으로써 차별을 두었다. 그러니까 <부채정치>의 명분은 선정善政이로되, 본질은 차별이었던 것이다.
3.
요즘 인사동갤러리에는 <부채전展>이 한창이라고 한다. 단오를 기해 부채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왕조는 몰락했어도 옛 풍속은 파릇파릇하다. 인사동으로 내 접선을 들고 나들이를 가야겠다.
/심보통 2016.6.10
콩댐(*)- 불린 콩을 갈아서 들기름 따위에 섞어 장판에 바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