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훈 문화칼럼] 아내의 장난, 문장의 유희
#아내의 장난, 문장의 유희
문장 기술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축약과 부연이다. 일반적으로 시와 신문기사의 속성이 축약이라면, 논문의 그것은 부연이다. 축약의 일장은 메시지가 압축돼 전달이 용이하다는 것이고, 일단은 여러 해석과 해설을 촉발시켜 논쟁의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부연의 일장은 추가적인 설명을 통해 독자가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이고, 일단은 읽어내기가 버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어제(14일) 나는 페이스북에 아래 사진과 함께 깡총한 두 문장을 남겼다.
"주말에도 야근한 아내를 위하여. 아내가 준비했다."
얼핏 비문처럼 보이지만 비문이라 할 수는 없는 문장이다. 우리 부부는 새벽 1시 30분에 낙지볶음과 간단한 안주를 마련해 맥주를 한 캔씩 했다. 맥주를 마신 이유는 '아내가 주말에도 늦게까지 야근한 것을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피곤해 할 아내를 위해 먼저 "고생했는데 한 잔 할까?"라고 물었고, 아내는 "좋아. 안주 좀 만들까"라고 답했다.
나는 "위로 주인데, 시켜 먹자"고 했다. 배달책자를 찾으니 이 시간까지 배달하는 식당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내가 "내가 금방할게. 낙지볶음."이라고 했고, 아내는 정말이지 뚝딱 내왔다. 그러면서 "배달 시켰어도 나보다 늦게 나왔겠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아내의 말과 맛깔난 음식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나는 사진 3장과 함께 원래 이렇게만 썼다.
"주말에도 야근한 아내를 위하여."
그걸 본 아내는,
"아니 뭐야, 그럼 자기가 한 줄 알잖아. '아내가 준비했다'를 붙여줘"라고 주문했다.
우리 부부의 소소한 일상의 단면은 그렇게 두 줄로 완성됐다.
"주말에도 야근한 아내를 위하여. 아내가 준비했다."
근데 막상 두 문장을 연결시키고 보니, 문장이 퍽 재미있게 느껴졌다. 액면 그대로만 보면 상식위반 문장, 발칙한 문장, 엇박자 문장으로 비칠 수 있겠다 싶었다.
"'피곤한 아내를 위해서 한 잔 한다'면서 '이 놈의 남편이란 작자가 아내에게 안주를 시켜?"
-라고 참 얄궂은 사연을 올리는 놈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몰지각한 놈! 세상이 어느 땐데"라고 아내를 자신의 딸로 착각하며 남편이란 놈을 욕했을 수도 있겠다.
이것이 바로 축약의 일단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연된 문장을 통해 실상을 보면, 아내는 남편의 행위에 장난을 걸어왔고, 그 장난이 반영된 글은 졸지에 우리 부부의 유희(遊戲)가 됐다.
그러니 이 대체 무슨 말인고? 하고 고개를 까딱대신 분들은 이제 그만 깔깔대고 마시길!
/심보통 2016.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