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이 만난 사람

[인터뷰打] 통번역가 유혜경

스토리텔링Pro. 심지훈 2011. 12. 6. 13:23

영어 스페인어 통·번역가 유혜경 씨와의 만남 
 

필자가 통번역 '고수' 유혜경을 만난 건 2004년 봄의 끝자락에서 였다. 그녀는 그해 봄, 대구가톨릭대 스페인어과에 출강했고, 아무개 교수가 '숨은 실력자'라며 인터뷰를 권했다. 필자는 당시 중앙일보 대학생기자로 활동 중이었다. 그 인연이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그녀는 대학 강의는 자신과 안 맞는다며 1학기 만에 전을 접고, 본업에 전념했다. 그녀는 묵묵히 자기 일에 매진하는 스타일이다. 사람과 관계도 거의 없다. 특히 번역을 시작하면 참선하는 스님이 된다. 가끔 필자가 상경하면 만나곤 하다, 최근 3~4년 뜸했다. 얼마전 필자가 상경하면서 그녀가 살고 있는 일산의 한식집에서 만났다. 새삼 옛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그녀의 생각은 8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 없으니 다시 한번 되새김질 하는 차원에서, 예비 통역가, 번역가를 위해 공개한다. 아래는 인터뷰 중 일문일답 전문.


▶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번역가의 길을 가게 된 남다른 사연이 있나? 
 - 대학을 졸업하고 곧 바로 결혼을 했어요. 남편이 클래식기타 전공자라 스페인을 따라 간 거고, 스페인에 가서는 스페인어를 안 하면 살아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공부를 하면서 정말 스페인어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돌파구를 찾은 게 언어를 통해서 저의 정체성을 한 번 찾아보자 생각하고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 번역가적 기질을 스스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나? 
- 처음에는 제가 타고났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왜냐하면 첫 작품이 굉장히 대중적인 작가가 다니엘 스틸의 작품이었고 쉬웠어요.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그 소설을 번역하면서 "난 정말 타고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환상을 깨게 됐지요. 그래서 지금은 번역가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철저하게 믿고있어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상식이나 언어적인 지식을 가지고 번역을 하려고 덤벼들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거죠. 그리고 절대로 그렇게 번역을 해서도 안 되구요. 

▶ 원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는 번안과 번역 사이의 갈등은 항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번역학에서 얘기할 때는 사실 번역이 의역이다, 직역이다, 아니면 번안이다 이런 식의 구분은 하지 않구요. 번역이란 무엇이고 근본적으로 어떻게 번역을 하느냐에 맞춰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똑같은 매뉴얼이라도 사내용이냐 아니면 소비자용이냐에 따라 전혀 달라지듯이 독자의 대상이나 범위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번역이다 그렇게 얘기를 해야지 번안이냐 번역이냐의 차원은 아닌 것 같아요. 

@ 지난달 29일 경기도 일산의 한정식집에서 필자와 만난 유혜경 선생이 음식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번역은 반역이다"란 이탈리아 속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 
- 저는 두 가지로 보는데요. 우선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이 나온 자체가 번역 자체를 비하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구요. 또 하나는 그 동안 번역을 너무 못한 거죠. 번역에 종사한 사람들이 번역을 너무 엉터리로 해서 이런 말이 나온 거라고 봐요. 

▶ 번역물 선정 기준은? 
- 처음에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무작정 다 했구요. 이제는 제가 출판사에서 선택을 당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작품이 좋고 제 스케줄과 맞으면 무조건 하죠. 요즈음은 스케줄상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시작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우선 출판사를 보고 다음에 작가의 필력을 보고 선택을 하지요. 

▶ 스스로 소화해내기 힘든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나? 
- 한 작품을 번역할 때 초기부분은 상당히 어렵고 모르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작품에 완전히 빠져서 몇 달을 살다보면 마무리 할 때쯤에 가서는 해결이 되죠. 예전에 "개미"를 번역한 이세욱 번역 작가는 실제로 원작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해결을 봤다고 얘기를 들었거든요.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 한 작품 번역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 보통 2달을 넘기지 않지요. 한 달만에 끝내는 경우도 있고... 이런 경우에는 중간에 딴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하는 거 빼고 물리적으로 번역하는 시간만 하루에 10시간 이상 투자하는 거죠. 하루에 15시간을 앉아 있을 때도 있어요.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직업적으로 변한 거죠. 

▶ 특별히 기억에 남는 번역 작품이 있다면? 
- 매번 한 작품이 끝나면 그 과정은 힘들지만 감동을 받곤 하는데 그래도 아주 특별하게 제가 감동을 받은 작품은 최근에 번역한 '더 블루 베어(The blue bear)'라고 하는 작품이 예요. 이 작품이 인상 깊었던 것은 제가 번역해 본 것 중 가장 어려웠던 작품이거든요. '더 블루 베어(The blue bear)'같은 경우는 저자가 원래 알래스카 탐험가이드예요. 자기 배를 갖고 가이드를 하는데 아주 오지만 다니는 그런 가이드예요. 가이드로서의 평생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지식들을 글로 쓴 거죠. 만일 저자가 백과사전을 통해서 얻은 지식으로 글을 썼다면 저도 백과사전을 통해서 번역을 하면 굉장히 쉽거든요. 근데 이거는 저자가 백과 사전적인 지식이 아니라 자기가 자연을 통해서 얻은 지식과 백과사전을 통해서 얻은 지식이 한 데 어우러져서 나온 표현인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어려웠어요. 

▶ 끝으로 번역가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한마디 
- 저는 번역작업을 운전하는 거 하고 많이 비교해요. 번역이 뭔지를 잘 알고 하는 사람하고 잘 모르고 하는 사람은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길을 안내하는 것과 똑같다는 거지요. 그래서 번역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한 다음에 번역도 분명히 하나의 전문 분야라는 것을 인식한 다음 시작하고, 모든 일의 공통점은 성실하게 하면 모두가 다 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더 이상의 정도는 없다고 생각해요. 

주요 번역서로는 ≪내 일생의 단 한번≫, ≪개를 살까 결혼을 할까≫, ≪해부학자≫ ≪패튼의 리더십≫  등이 있다. 2011년 11월말 현재, 100여권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