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이 만난 사람

[인터뷰打] 25세 역사소설가 이현석

스토리텔링Pro. 심지훈 2017. 9. 20. 23:17


[심지훈이 만난 사람]

역사 장편소설 군신의 피저자 이현석

 

상상력이야말로 모든 지식을 뛰어넘고

 더욱더 숭고한 것을 추구하게 만들죠


내신 1등급에 서울대 지망생이었던 그

수능 3개월 앞두고 재수 접고 고전탐독

매일 10시간 이상 8권씩 3,000권 독파

1,400여 년 전 여수전쟁 소설로 되살려

 

·사진=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이현석은 스물다섯에 첫 번째 책을 낳은신예 역사소설가다. 그는 최근 113만 수나라 대군과 맞서 싸워 승리한 여수전쟁(598~614)를 모티브로 한 역사 장편소설 군신의 피를 펴냈다. 그가 인터뷰이로 끌린 이유는 한국일보에 실린 책 광고 속 저자소개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황 중에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 감명을 받고 도서관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이 한 줄이 심상찮게 읽혔다. 그를 만나기 위해 메일로 3가지를 먼저 물었다. ‘책을 내기까지 짧은 생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달라, 왜 역사에 빠지게 됐나, 앞으로 어떤 작가로 살아가고 싶은가’. 답신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다. A4 용지 2장 분량의 답신엔 스물다섯신예 역사소설가의 녹록지 않은 정신머리가 고스란히 담겼다. 소낙비가 묘하게 그만 피해서 내린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3가역 4번 출구 초입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연예인 뺨치게 생긴 훈남이기까지 했다.

 

#“서울대 가려 재수하다 난생처음 꿈이 생겼죠

-첫 책을 낸 소감은.

그냥 얼떨떨해요.”

-60번 이상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고.

학력도 경력도 미천한 사람이 책을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하게 깨달은 시간이었죠.”

 

그는 고졸이 최종학력이다. 책을 내려다 대학진학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전공을 물색 중이다.

 

-용케 출판을 했다.

책 출판을 위해 장기전으로 돌입하려는 찰나 청어출판사 이영철 대표님이 직접 전화를 주셔서 거의 고칠 게 없는 훌륭한 원고라며 출판하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나.

수능점수는 잘 안 나온 편이지만, 내신은 평균 1~2등급으로 좋았어요.”

-재수는 수능점수가 생각보다 안 나와서 한 건가.

. 원래 서울대를 준비했었는데, 점수가 낮게 나와서요.”

-꼭 서울대여야 했나.

그땐 그게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전부였으니까요. SKY(서울대, 고대, 연대의 약어) 나와서 직장인이 되는 거.”

-근데 왜 재수를 포기했나.

난생 처음 진짜 꿈이란 걸 꾸게 됐거든요.”

-무슨 꿈인가.

시인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재수할 때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독서실 총무로 일했는데, 하루 종일 독서실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밤바다 시를 썼죠.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부모님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맞아요. 아직도 생생해요. 어머니와 단둘이 밤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꿈을 찾았는데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하던 공부는 해라. 그런 뒤 하고 싶은 걸 확실히 해라라고 차분히 말씀해 주셨죠.”

-그런데도 말을 듣지 않은 거네.

결심은 섰고, 일단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아버지를 초등학교 때 여의었다. 어머니와 세 살 위 형과 살고 있다. 어머니는 어머니 돈을 번다. 형은 형 돈을 번다. 그도 그의 돈을 벌어야했다. 고교졸업 후 회사 경비와 레스토랑 서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다. 지금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10시에 퇴근하는, 고되지만 떳떳한 레스토랑 정규직으로 있다. 시가 좋고, 고전이 좋고, 글쓰기가 미치도록 좋아 돈을 번다. 하지만 글쓰기가 미치도록 좋은 만큼 점점 글쓰기가 어렵다는 것도 느낀다.

 

#“세계명작에 빠져 역사 생각을지문덕은 운명

-그 다음은.

집 앞 송파도서관으로 출퇴근했죠. 재수를 포기한 스무 살 8월부터 군입대 전인 스물한 살 10월까지 매일 12~13시간씩 동서양 고전을 읽었어요. 평균 8권씩 읽었는데 하루에 적게는 5, 많게는 11권씩 읽었죠.”

-시인이 되겠다더니. 웬 고전.

고전이 바탕이 돼야 시를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전에는 철학과 교훈이 담겨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몇 권의 고전을 읽었나.

글쎄요. 정확히 세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군 생활(21개월) 동안 읽은 책은 메모를 해둬서 200권이란 걸 알아요.”

그의 말을 토대로 역산하면 3,000(주말 제하고 125×18×15개월)의 고전을 읽은 게 된다. 그는 이 기간에도 틈틈이 시를 습작했고, 그렇게 쌓인 시가 100편이 넘는다고 했다.

-고전을 읽다가 어떻게 역사로 빠진 건가.

세계명작을 읽다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중국에는 삼국지가 중국인들의 자부심이 되고 서양인들은 빅토르 위고나 톨스토이, 단테, 헤밍웨이의 명작으로 인해 자긍심을 갖는데, 우리나라는 왜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작이 없을까.’”

-그래서 군신의 피를 쓴 건가.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역사소설이나 사람들의 자긍심이 될 책 한 권이 탄생하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들에게 스며든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새로운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거라 믿었습니다.”

-왜 여수전쟁을 테마로 잡았나.

여수전쟁은 제 눈엔 신비한 기록으로 보였어요. 어느 책에 보니 여수전쟁은 1차 세계대전 이전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 가장 대규모 전쟁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왜 고구려는 수의 속국이 되지 않았을까 궁금해지더군요. 을지문덕 장군을 찾아봤습니다. 그거 아세요?”

-뭘 말하는 건가.

을지문덕만큼 미스터리한 인물이 없어요. 생몰연대가 안 나오고, 이순신만큼 명장이었는데도 여수전쟁 이전과 이후 그에 대한 기록은 없죠. 딱 여수전쟁 중 기록만 있는 겁니다. 상상력이 무한정 발동하는 대목이죠. 을지문덕 장군을 만난 건 제겐 운명 같은 거죠.”

-‘군신의 피는 어떻게 썼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1차 자료로 삼았고요. 인터넷으로 중국 쪽 자료를 취합했어요.”

-집필기간은 마나 걸렸나.

“1년은 일을 병행해서 썼고, 나머지 5개월을 집중해서 썼어요.”

-스토리 라인은 어떻게 잡았나.

을지문덕 장군의 시각으로 여수전쟁을 보는 게 아니라 가상인물인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 순덕이 여수전쟁을 바라보게 했죠. 거기에 순덕의 라이벌 진사가를 통해 반목과 배신을 그렸고요.”

 

여수전쟁은 598(영양왕 9)부터 614(영양왕 25)까지 벌어진 고구려와 중국 수나라와의 전쟁이다. 581(평원왕 23)에 건국된 수는 문제(589) 대에 이르러 300년간 분열돼 있던 중국을 통일했다. 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동아시아 대륙 전체를 중국 일국 지배체제 하에 놓기 위해 고구려에게 복속을 강요했다. 동북아지역에서 독자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고구려는 전쟁의 길을 택했다. 고구려의 선제공격으로 16년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113만 수나라 대군 중 30만 별동군은 그 유명한 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 군에게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612년의 일이다. 613~14년 아버지의 숙원을 풀기 위해 수양제는 거듭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번번이 패했다. 618(영류왕 1) 양제가 피살됨에 따라 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성경을 소설에 쉽게 풀어 독자와 교감하고파

-소설의 백미는.

신라군과의 참혹한 전쟁에서 순덕의 심리를 묘사한 대목입니다.(pp140~144)”

그는 글비가 내린다걸 이 부분을 쓰면서 맛봤다고 했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쓰여지는 것이란 것도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순덕의 마음은 전쟁에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져 울고 있는 소년과 같았다. 모든 것을 잃어 타계를 찾아 헤매는 애처로운 발걸음이 그를 이승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 듯, 한가득 울음을 머금은 메아리가 되어 가장 절실한 것을 찾고 있었다. 북과 나팔이었다.(p142)’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책에는 반드시 교훈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고전을 공부하기 전에는 단순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고전을 공부하면서 성경이야말로 이기적인 사회를 사랑과 의로운 사회로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쓴 성경을 소설에 풀어쓰고, 그것을 통해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