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이 만난 사람
[인터뷰打] 대한민국 대표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스토리텔링Pro. 심지훈
2011. 11. 19. 11:21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호세 리
스물 넷 기타가 좋아 무작정 스페인으로 날아간 사나이
"스페인 음악 대중화 대학생들이 첨병 역할해야 나는 멘토"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스페인 현지 왕립음악학교에서 플라멩코기타를 전공했다. 항상 그렇지만 미개척 분야를 개척하는 데는 그만큼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데, 어떻게 플라멩코 기타를 전공하게 되었나?
- 평소에 기타 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로 활동해야 한다는 미래의 계획은 없었다. 그냥 기타가 좋았을 뿐이다. 그러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스페인 무용을 전공하시던 주리(64) 선생님께서 1973년에 잠시 귀국해서 동양방송을 통해 공연을 한 일이 있는데, 그때 주리 선생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해서 공연장을 찾았고, 그 인연으로 이듬해 5월 기타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갔다.
24살의 나이에 스페인으로 건너 간 것인데, 스페인 현지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 언어적인 문제였다. 왕립음악학교 입학 수속은 주리 선생님의 도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상황인데다 돈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니 시장을 본 다거나 옷가지를 살 때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마드리드에 있는 국립언어학교에서 쁘레빠라 끄루소(Prepara Cruso) 과정을 선택해 스페인어를 1년 동안 공부했다. 그리고는 생활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현재는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면에서 어떤가? 수요가 괜찮은가, 아니면 후배 양성을 위해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가?
- 지금 스페인 음악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40명 정도인데, 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하다. 아직까지는 스페인 음악을 많이 알리는 단계이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영리추구 보다는 후배들 양성이다.
@ 이 인터뷰는 9년전 필자가 중앙일보 대학생기자단 '아리아리'에서 활동 때 한 것이다. 호세 리 씨를 스페인 음악의 세계로 이끈 건 무용가 주리(사진 왼쪽) 씨다. 40년전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여태 동반자요, 친구요, 사제로 지내면서 압구정에서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아카데미 실내 액자사진을 찍은 것이다. 근 6만에 필자와 재회한 호세 리는 여전히 열정적인 마초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 88년도에 88올림픽 홍보를 위해서 문예진흥원 초청으로 스페인 무용단(마리아 루사)과 함께 일시 귀국한 일이 있다. 그 당시 동료들은 한국이란 나라가 아주 작은 나라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는데, ''이게 너희나라 비행기냐?''며 큰 비행기를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1급 호텔에 숙박지를 선정해 주니, 눈이 휘둥그레지더라. 재미있었다. 이 공연이 내게는 국내에서는 첫 공연이었는데, 관객들 반응도 좋았고 한국으로 온 것이 감개무량했다. 실제로 이 공연 후, 스페인으로 음악을 배우겠다고 유학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내게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스페인 음악을 한 곡만 추천한다면?
-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곡자 중 한 사람인 로드리고의 '어느 신사를 위한 환상곡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을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한다. 이 곡은 기타음악이 아니라 관현악곡데, 스페인의 국민음악가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를 생각하며 작곡한 곡이다. 장님인 로드리고가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마누엘 데 파야가 많은 도움을 주어서 로드리고가 마누엘 데 파야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이 곡에 잘 녹아있는 것 같다.
한번은 TV에서 스페인 음악단원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는 한국 지휘자를 본 적이 있다. 스페인에서 25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한국 알리기에 열심이었다는데, 이를테면 어떤 것이었나?
- 지금이야 한인 번영회가 운영하는 한인학교 학생들이 80명이 넘지만 72년에 그 당시 스페인으로 공부하러 온 선생님들과 이민 2세 8명을 데리고 교민회에서 한인학교를 처음으로 운영했다. 쉽지 않았지만 보람된 일이어서 모두들 열심히 했다.
스페인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 스페인 음악이 보급되자면 대학생들이 많이 공부를 해야한다. 여기에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나는 그렇게 못했지만 이제는 경제적인 면도 고려해야한다. 미래에 내가 얼마나 대성할 수 있느냐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한 곡을 배우더라도 그 노래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배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호세 리 씨는 25년 간 스페인에서 수학(修學)하면서 스페인 현지에서 순수 스페인들을 위한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했다. 국내에서는 88년 문예진흥원의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95년 정부초청 광복50주년 한민족 예술제 참가, 98년 플라멩코협회 주최로 문화일보 홀에서 한국인 최초로 플라멩코기타 연주회를 가졌다.
현재 호세 리 씨는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세종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플라멩코기타를 가르치고 있다.<04.4.19 沈>
스물 넷 기타가 좋아 무작정 스페인으로 날아간 사나이
"스페인 음악 대중화 대학생들이 첨병 역할해야 나는 멘토"
국내 대표적인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로 잘 알려진 호세 리(54.사진) 씨. 그는 1973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스페인 왕립음악학교 기타과에 입학했다. 25년간 스페인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압구정동에서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하며 후배들 양성에 열심이다. 30년 전, 그 누구도 관심 두지 않았던 스페인 음악에 대한 그의 남다른 사랑을 들어봤다.<편집자주>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스페인 현지 왕립음악학교에서 플라멩코기타를 전공했다. 항상 그렇지만 미개척 분야를 개척하는 데는 그만큼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데, 어떻게 플라멩코 기타를 전공하게 되었나?
- 평소에 기타 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로 활동해야 한다는 미래의 계획은 없었다. 그냥 기타가 좋았을 뿐이다. 그러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스페인 무용을 전공하시던 주리(64) 선생님께서 1973년에 잠시 귀국해서 동양방송을 통해 공연을 한 일이 있는데, 그때 주리 선생님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해서 공연장을 찾았고, 그 인연으로 이듬해 5월 기타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으로 갔다.
24살의 나이에 스페인으로 건너 간 것인데, 스페인 현지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 언어적인 문제였다. 왕립음악학교 입학 수속은 주리 선생님의 도움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스페인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상황인데다 돈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니 시장을 본 다거나 옷가지를 살 때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마드리드에 있는 국립언어학교에서 쁘레빠라 끄루소(Prepara Cruso) 과정을 선택해 스페인어를 1년 동안 공부했다. 그리고는 생활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현재는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면에서 어떤가? 수요가 괜찮은가, 아니면 후배 양성을 위해 손해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가?
- 지금 스페인 음악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40명 정도인데, 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하다. 아직까지는 스페인 음악을 많이 알리는 단계이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영리추구 보다는 후배들 양성이다.
@ 이 인터뷰는 9년전 필자가 중앙일보 대학생기자단 '아리아리'에서 활동 때 한 것이다. 호세 리 씨를 스페인 음악의 세계로 이끈 건 무용가 주리(사진 왼쪽) 씨다. 40년전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여태 동반자요, 친구요, 사제로 지내면서 압구정에서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아카데미 실내 액자사진을 찍은 것이다. 근 6만에 필자와 재회한 호세 리는 여전히 열정적인 마초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 88년도에 88올림픽 홍보를 위해서 문예진흥원 초청으로 스페인 무용단(마리아 루사)과 함께 일시 귀국한 일이 있다. 그 당시 동료들은 한국이란 나라가 아주 작은 나라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는데, ''이게 너희나라 비행기냐?''며 큰 비행기를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1급 호텔에 숙박지를 선정해 주니, 눈이 휘둥그레지더라. 재미있었다. 이 공연이 내게는 국내에서는 첫 공연이었는데, 관객들 반응도 좋았고 한국으로 온 것이 감개무량했다. 실제로 이 공연 후, 스페인으로 음악을 배우겠다고 유학 온 사람들이 많았다. 내게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스페인 음악을 한 곡만 추천한다면?
-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곡자 중 한 사람인 로드리고의 '어느 신사를 위한 환상곡 Fantasia para un Gentilhombre'을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한다. 이 곡은 기타음악이 아니라 관현악곡데, 스페인의 국민음악가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를 생각하며 작곡한 곡이다. 장님인 로드리고가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마누엘 데 파야가 많은 도움을 주어서 로드리고가 마누엘 데 파야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이 곡에 잘 녹아있는 것 같다.
한번은 TV에서 스페인 음악단원들에게 아리랑을 가르치는 한국 지휘자를 본 적이 있다. 스페인에서 25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한국 알리기에 열심이었다는데, 이를테면 어떤 것이었나?
- 지금이야 한인 번영회가 운영하는 한인학교 학생들이 80명이 넘지만 72년에 그 당시 스페인으로 공부하러 온 선생님들과 이민 2세 8명을 데리고 교민회에서 한인학교를 처음으로 운영했다. 쉽지 않았지만 보람된 일이어서 모두들 열심히 했다.
스페인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자면?
- 스페인 음악이 보급되자면 대학생들이 많이 공부를 해야한다. 여기에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나는 그렇게 못했지만 이제는 경제적인 면도 고려해야한다. 미래에 내가 얼마나 대성할 수 있느냐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한 곡을 배우더라도 그 노래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배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호세 리 씨는 25년 간 스페인에서 수학(修學)하면서 스페인 현지에서 순수 스페인들을 위한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했다. 국내에서는 88년 문예진흥원의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95년 정부초청 광복50주년 한민족 예술제 참가, 98년 플라멩코협회 주최로 문화일보 홀에서 한국인 최초로 플라멩코기타 연주회를 가졌다.
현재 호세 리 씨는 스페인음악무용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세종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플라멩코기타를 가르치고 있다.<04.4.19 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