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훈 문화칼럼] <토지 촬영장>에서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다
#<토지 촬영장>에서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다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 '토지문학관'을 가자고 한 것은 누나였다. 이번 방학 동안 논문만 내리 2편을 마무리하고, 머리도 식힐 겸 새 논문에 사용할 토지문학관 구성 요모조모를 따져보겠다고 어머니를 대동하고 길을 나선 것이다. 나는 운전기사로 따라갔다.
드라마 세트장을 둘러보던 누나는 내게 "이게 스토리텔링 아니냐"고 했다.
나는 "우연의 일치지. 스토리텔링은 아니다"고 했다.
부연설명이 필요했다.
"박경리 선생은 소설을 쓴 거지. 구한말 이곳 평사리 최참판댁 딸 서희의 삶을 모티브로 우리네 민초들의 삶, 전 영역으로 확장해 대작을 만들어낸 것이지.
그럼 소설이 스토리텔링이냐. 그렇게 말하면 소설가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분들은 동의하지 않겠지.
그럼 소설과 스토리텔링은 무엇이 다른가.
지금 청송에 '객주타운'이 형성되고 있는데, 예전에 김주영 선생이 자기가 스토리텔링을 하는 사람이고, 스토리텔러라고 하더라고.
속으로 '이 양반 참 웃기는 양반이네' 라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소설은 소설이고, 스토리텔링은 스토리텔링이지. 둘이 왜 같냐는 말이야.
내가 보기에 김주영 선생은 '허띠기'야. 공자가 일흔이면 종심소욕이라고는 했지만, 그만큼 살고도 똥인지 된장인지 못 가리면 헛산 거 아닌가.
가만 따져보자고, 소설과 스토리텔링은 확실히 달라.
우선 소설은 허구야. 스토리텔링은 창작물이지만 목표가 정확해.
두 번째는 스토리텔링에 작품성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스토리텔링은 사용 가능한 이야기를 만드는 거야. 반면, 소설은 문학성을 띠어야 하지.
세 번째는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분명해. 사람의 냉가슴을 녹이는 소설의 목적과는 달라.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원소스멀티유즈야. 구현하고, 활용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야. 이 대목에서 누나나 김주영 선생이 헷갈린 것 같아. 소설 <토지>가 이렇게 실제물로 구성된 것은 허구의 산물이지. <객주>도 마찬가지고. 모양이 비슷하다고 이걸 어디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과 비교할 수 있겠어?
이제 내가 왜 최참판댁을 스토리텔링이라고 하지 않고, 우연의 일치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박경리 선생이 스토리텔링했다고 하면 무덤에서 펄떡 일어날 일이야.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지.
지금 소설가들이 자기네 영역이네 하고 스토리텔링이라면서 소설처럼 쓰는 글들은 자기네들의 대단한 착각의 산물이야. 그걸 모르고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 하는 거라고.
그러니 내가 답답해 하는 거지."
문학박사인 누나는 내 얘기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스토리텔링학의 정립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일시 유행에 그치고 사장되고 말 운명에 처해 놓일 것이다.
/심보통201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