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학교①-멸치가시가 목구멍에 박힌 아내
결혼학교①-멸치가시가 목구멍에 박힌 아내
아내와 나는 꼭 3년 연애하고 그 이틀 뒤 결혼에 골인했다. 연애기간 동안 (여행을 명분으로 그러나 실은) 낯선 곳에서의 식도락(食道樂)을 즐기는 아내 덕분에 전국 팔도를 유람했다. 그런데 우리가 거쳐 온 곳을 다시 되짚어보면 그곳에는 어김없이 찐한 추억이 배어 있다. 하도 싸워서 뭐 때문에 싸웠는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지만 이곳도 싸웠던 곳, 저곳도 싸웠던 곳이다. 그만큼 우리는 연애 3년 동안 죽어라하고 싸웠다. 그러나 싸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확인하고, 확신을 갖는 시간을 가져온 것이다. 그렇게 싸우고도 헤어지지 않았으니 우리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 아닐까 싶다. 하나 그러다가도 아내가 나를 뿔나게 하면 ‘나는 절대 자기애가 강한 여자랑은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고 ‘내 자식한테는 절대 엄마 같은 여자하고는 결혼하지 말라고 알려줘야지’하고 속으로 되뇐다.
어제가 그랬다. 퇴근하고 온 아내는 서둘러 저녁상을 차렸다. 저녁식사 후 얼마 전 출산한 동료한테 병문안을 가야 한다고 했다. 낮까지만 해도 퇴근 후 바로 가겠다고 했다가 퇴근시간이 다 돼서야 저녁을 챙겨주고 가겠다며 집으로 왔다. 그런 아내 마음은 고맙기 짝이 없다. 세상풍토가 어떤지 그 실상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순 없지만, 들리는 바를 깜냥대로 이해하면 남편 밥 차려 주러 부러 집에 왔다나가는 젊은 아내는 그야말로 ‘훈장감’이 아닐까 싶다. 어제는 ‘계란말이 신공’을 선보이며 룰루랄라 저녁상을 차렸다. 누가 봐도 먹음직스럽게 곱게 잘 말아진 계란말이 하나만으로도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어머니 밥상에선 감동거리도 안 될 것인데, 아내가 하니 별 재주가 다 있다 싶었다. 국거리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남편(이 또한 ‘3년 전쟁’의 교훈이렷다!)을 위해 된장찌개에 마른반찬 몇 가지에 계란말이에 스팸까지, 그만하면 한 끼 식사로 훌륭했다. 그런데 사랑이 너무 넘쳤던 탓일까. 저녁 분위기는 곧 엉망이 됐다.
두어 술 떴을까. 아내가 컥컥거리기 시작했다. 쥔 숟가락을 내팽개치고 화장실로 뛰어들어 갔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켁켁대는 아내의 등만 두들겨줬다. 왜 그래? 뭐가 걸렸어? 아내는 변기에 고개를 박고 쾍쾍댔다. 구역질을 하면서 뭔가를 토해냈다. 그러고도 괴롭다는 듯 인상을 마구 구겼다. 엄지손가락으로 목구멍 안쪽을 갔다대더니, 목구멍에 멸치가시(아내는 멸치볶음을 무진장 좋아한다)가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별일이다 싶었다. 멸치가시라니. 그 조그마한 멸치에 가시라니! 퍼뜩 민간요법을 생각해냈다. 냉장고에서 며칠 전 먹다 남긴 상추를 꺼내 상추쌈을 크게 싸 먹어보라고 했다. 아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건 큰 가시가 걸렸을 때 하는 처방이라나. 그럼 병원을 가자고 했더니, 병원에도 안 간다 했다. 이 시간에 문 연 병원이 없다나. 병문안을 같이 가기로 다른 동료랑 약속을 했다나. 그러면서 얼굴이 붉게 상기돼 계속 쾍쾍댔다. 급히 ‘인터넷 찬스’를 썼다. 목에 생선가시가 걸렸을 땐 식초나 홍초 같은 산성음료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산 성분이 가시를 녹인다고 했다. 그걸 권했더니, 싫단다.(젠장, 죽겠다고 인상 쓰는 중에 할 말은 다한다!)
문득 예전에 본 시사 프로가 생각났다. 목에 걸린 작은 가시를 방치해 두었다가 전염병으로 전이돼 큰일을 당한 환자 사연을 본 일이 있었다. 곧 죽을 것처럼 괴로운 상황이라면 상추쌈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지만, 자칫 가시에 망치질하는 격이 될 수 있어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식초를 권하는 것도 병의 근원을 방치하는 격이 될 수 있어 섣불리 권할 게 못됐다. 병원행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 다시 밥상에 앉더니 태연하게 밥술을 뜨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밥 먹으란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저 태연함이라니!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 상황에서 밥이 넘어가? 자기가 밥 먹으라며. 병원 가자. 참았다 내일 가지 뭐. 손톱에 작은 가시 하나 박혀도 얼마나 불편한데. 자기 오늘 잠 못 자. 나는 119(기자를 한 게 보탬이 됐다)에 전화를 걸었다. 야간 진료하는 이비인후과를 안내받았다. 그 길로 병원을 데리고 갔다. 이비인후과에는 유아환자들로 득실댔다. 아내 케이스는 특이해 보였다. 병원에 당도하자, 괜한 헛웃음이 나왔다. 아내 왈, 계란말이 밑에 조그마한 멸치가 밥풀에 묻어 있었는데 그걸 너무 빨리 먹었나 봐. 배가 무지 고팠거든.
의사는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확대경을 들이대 가시 박힌 곳을 찾아내곤 곰방 핀셋으로 집어냈다. 아내는 목구멍을 소독하고, 병원에서 나와 강아지마냥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아, 상쾌해. 마침 병원 인근은 새롭게 형성된 먹거리촌이었다. 온 김에 거리구경에 나섰다가 커피를 한 잔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내는 내가 자기를 두 번 살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한 번은 연애하면서 살려줬는데, 그때는 떡볶이가 문제였다. 대구에서 오랜만에 신떡(매우 매운 떡볶이)을 양껏 먹고 그날 밤, 아내는 복통을 호소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마도 떡볶이의 매운맛이 위장에 무리를 준 듯했다. 그때도 어제처럼 난망하긴 마찬가지였고, 그때도 아내는 내 말을 쉬이 듣지 않았다.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배를 잡고 돌돌 구르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119를 부를까 하니, 부르지 말라고 했다. 물을 먹어 보래도 싫다고 했다. 겨우 물 한 모금 마셨으니 차도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급처방이 생각났다. 매운 걸 가라앉히는 데는 단것! 급히 알로에를 구해서 윽박을 질러 먹였다. 딱 두 목음 마셨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아내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났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채 씨익 웃으니 장난하나 싶으면서도 금세 나았다 싶어 놀란 가슴이 진정됐다.(만약 이때 우유를 먹였다면, 불에 기름을 부은 짝이 됐을 테다.)
내가 아내를 반려자감으로 낙점한 것은 자기애가 강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자기 단도리를 잘한다. 단점은 사귀면서 알았다. 아내는 위기 때도 자기애를 발휘한 나머지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사람 복장 다 뒤집어놓고, 가로 늦게 고마워, 사랑해. 자기 덕분에 살았어-라고 혀 짧은 소리를 한다. 나는 이제 안다. 3년 전쟁의 교훈은 우리가 그런대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이라는 것을. 아내는 절대 내가 바꾸지 못한다. 아내는 아내의 사고습관, 행동양식, 언어체계가 있다. 나는 나대로 그런 것이 있고. 아내를 행동하도록 만들 수 없다면, 아내가 행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가 아내를 두 번 살렸다는 말은 아내의 관점일 뿐이다. 아내 스스로 두 번 살아난 것이다. 고통을 덜 받고 살아난 때가 내가 판단한 때와 달랐을 뿐이다. 아내는 조금씩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이지만, 글쎄다. 또 다시 위기가 닥쳐오면 아내는 아내의 시스템대로 움직일 것이다. 각자의 인격체가 한쪽을 맹신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난세스다. 한쪽이 어느 한쪽을 줄곧 따르거나 따라야 한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자기애가 약하거나, 어떤 나쁜 상황이 자기 본연의 시스템을 작동시킬 정도까지는 나쁘지 않다고 여기거나.
나는 지금 이대로 자기애가 강한 아내를 응원한다. 위기에 좀 더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면 좋겠다고. 컥컥-켁켁-쾍쾍으로 그 고통이 확장되기 전에 남편의 말을 재빨리 따르는 것도 위기를 넘는 묘수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어쨌든 다시 팔팔하게 생동하는 아내 모습에 안도한다. 되레 내가 고맙다. 당신이 아프면 내가 괴로워지는 고로!
*오늘의 교훈= 사람은 누구나 일장일단을 가진다. 장점을 높게 쓰고, 단점은 보듬어 써야 지혜롭다 할 것이다. 지혜란 다른 게 아니다. 아내가, 남편이 스스로 내가 만족할 판단을 할 때까지 기다라는 것이다. 그래봐야 긴 인생으로 치면 매우 빠른 판단이 될지니.
2015.1.29 샘머리결혼학교장 심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