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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窓] 시인의‬ 죽음과 모악의 탄생

스토리텔링Pro. 심지훈 2016. 4. 5. 19:09


‪#‎시인의‬ 죽음과 모악의 탄생
<상상력의 깊이와 시 읽기의 즐거움>이란 책이 있다. 오늘 아침 신문엔 이 책의 저자 부고가 전해졌다. 단신기사로 최하단에 박혔기로 요행히 눈에 밟혔다. 시인 송수권(1940~2016)은 4일, 청명절에 바람결에 저 하늘로 유랑 떠나는 벚꽃잎처럼, 고봉밥처럼 부푼 흰목련이 우수수 떨어듯이 그렇게 하늘로 떠나갔다. 
남도 시인 송수권은 나를 알 턱이 없다. 나 역시 송 시인을 잘 안다 할 수 없다. 하나 무릇 세상 모든 글쟁이가 그렇듯 송 시인은 그의 작품으로 독자와 소통하기를 원했던 만큼, 내가 그를 좀 알은 체 한다 해도 나쁠 것은 없겠다.
내가 송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서너 해 전, 아버지의 서재에서였다. 우연히 빼내 든 <상상력의...>에서 내가 못다 푼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이 책을 아버지 소장서에서 내 소장서로 옮겨놓았다. 자고로 '책도둑은 나무라는 법이 없어야 한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기에. 
내 수수께끼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감성을 자극한다"는 단순명제였다. 그러나 그 실재를 확인하려 들면 들수록 의문만 커져 갔다. 


"이야기는 정녕 시시때때로 눈물샘을 자극케 하는가."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보면서 울지 않는다. 그런데 음악프로 <불후의 명곡>을 보면서는 잘도 운다. 그건 '바보상자'가 현대인의 눈을 완전 홀린 탓인가."

뭐, 이런 생각과 의문을 갖고 있을 때 나는 <상상력의....> 송 시인을 만났다. 100편 남짓되는 좋은 시를 뽑아 그가 해설을 덧붙인 것으로 굳이 부제를 달면 '대한민국 좋은 시 해설서' 정도가 되겠다.
그 시편들 중 최두석(1956~)의 '노래와 이야기'에 붙인 송 시인의 '군말'이 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어주었다.


-감성(노래)과 지성(이야기)이 즉 심장과 뇌수가 가장 긴밀히 연결된 것이 시라고 말한다. 그래서 첫행의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고 말한다. 그리고 단적인 예를 처용에서 찾는다. (하략)'-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생각할 것도 없이 그의 말이 옳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현대인의 눈물샘을 자극한 건 다름 아닌 노래다. 노래야말로 심금을 울린다. 음이 사라진 가사는 그저 뇌수에 맴돌 뿐이다. 그러나 그 뇌수에 맴도는 노랫말이 또 다른 사연을 양산한다.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스토리텔링의 궁극적인 목표인 입김(입소문)이 세지려면 이야기 자체가 곧 노래가 되면 좋겠다고.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스토리텔링이란 감성을 자극하는 것으로..." 따위의 맹랑한 이야기는 구태여 보태지 않는다. 모든 이야기가 노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송 시인은 내게 큰 깨달음을 하나 안겨준 고마운 분이다. 
그런데 이 분의 부고기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아 속상하다. 꼴랑 1단이다. 그가 서울에서 활동한 시인이라면, 부고기사 크기는 더 컸을 것이다. 그는 부고기사 제목마냥 그저 '남도의 서정시인 송수권'이 아니라 '대한민국 서정시인 송수권'이었다. 웬만한 시문학상은 휩쓴 성실하고도 실력있는 시인이다. <상상력의...> 송 시인 해설은 그 자체가 시어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푸대접할 시인은 필시 아닌 듯해 섭섭하기까지 하다.


묘하게도 송 시인이 생을 마감하던 비슷한 시각, 전주에서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동향의 문인들이 '모악'이란 출판사를 공동창업하고, 창업식에 맞춰 첫 책을 출간했다. 이 소식도 오늘자 조간신문에 보도됐다. 
이 기사는 송 시인의 부고기사보다도 컸다. 내 요량으로는 지역에 전을 차린 '모악'이 정작 간담회는 서울 광화문에서 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묘한 생각이 들었다. 지역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시인의 죽음은 1단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신생출판사 창립소식은 2단으로 취급됐다. 아직까지 우리 정서는 경사보다는 조사에 더 큰 마음을 내어준다는 점에서 송 시인의 부고는 아니 다룬 것만 못하다 싶었다.


그래도 어쩌랴. 일은 그렇게도 되어지고, 저렇게도 되어지는 것을. 일단은 속상하고 섭섭해서 삐뚤어지려는 마음을 자중시키고, 새롭게 탄생한 '모악'에게 바란다. 부디 또 하나의 문단권력이 아니라 지역에 묻힌 훌륭한 신인을 발굴해 그들의 앞날에 작은 등불이 되어주길... 
"모악은 시, 소설, 산문 등 문학서를 중심으로 문학의 저변 확대에 필요한 입문서와 청소년 책들을 함께 펴낼 계획이다.(한국일보 2016.4.5, 21면)" 
모악은 창립 첫 시집으로 평생 전북에서만 산 정양의 것을 낙점했다고 한다. 기사엔 '중앙 문단'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표현을 여과 없이 썼다. 글로벌한 시대에 우리는 아직도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 세상 속에 갇혀 있음을 새삼 절감한다. 송 시인은 어쩌면 자신이 평생 산 값으로 너무나도 박한 대우를 받고 떠나갔을지 모르지만, 정 시인은 그러지 않게 되기를, 역시 빈다.
이 빈약한 글이 송수권 시인 마지막 가시는 길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심보통201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