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窓] 언론인 이춘호
#언론인 이춘호
언론인 이춘호(영남일보 재직)는 내게는 한참 선배다. 선배가 대학을 다닐 때, 나는 엄마 뱃속에서 열심히 유영하며 고고의 울음을 터뜨릴 준비에 한창일만큼 인생살이 간극이 있다. 위계질서가 바닥인 세태라 해도, 여전히 사회 통념상으로 보면 얼굴조차 쳐다보기 어려운 위치에 그가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신문사를 떠나올 때 마지막 식사를 한 동료가 이춘호 선배였다. 이춘호 선배는 대구경북언론계에서 거의 '도인'으로 통한다. 그가 내뿜는 풍모, 이미지가 타자에게 그런 인상을 준 결과이리라.
선배의 언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선배의 칼럼 주제는 대개가 성(聖)과 속(俗)의 경계 지점에 있다는 것. 선배는 마치 그 경계에서 작두를 타는 박수(남자무당) 같다. 선배의 칼날(펜)은 곧장 현실세계를 푹 쑤시지 않는다. 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성의 줄을 튕기는 수법이다.
그래서 칼럼에서도 그의 '도인 포스'가 작렬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는 사실 시인에 가깝다. 선배는 마지막 식사 때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자네는 시를 쓰는가?" "네?" "시를 써 보는 게 어떤가?" "대학 때 시를 쓰긴 했었습니다. 군에서도 조금 썼구요." "그래, 글쟁이는 시심이 있어야 하네."
사실 그땐 몰랐었다. 선배가 식사가 끝난 뒤 회사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뜬금없이 던진 질문이어서 뚱딴지같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문사를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고 보니, 선배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마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정말이지 언론인이든, 수필가든, 소설가든 글쟁이란 직업을 가진 자들은 죄다 시심이 있어야 한다!
시심이 뭔가. 세상을 관조하는 마음이다. 세상을 냉철하게 보는 마음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마음이다. 세상을 비틀 줄 아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의 눈을 가져야 비로소 올곧은 글쟁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근자에 한 통화에서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철학과 도 공부를 오랫동안 해왔다네."
선배는 이미 속세에 있으면서도 그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도, 끔찍한 환경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질을 꿰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눈을 갖게 된 결정적 이유는 첫째가 기자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노력하는 기자였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결과 그가 곧잘 즐겨쓰는 단어로 이야기하면 그는 '고수'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닐까 한다.
선배의 글이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을 느낀다. 성과 속, 두 현 위에서 펜을 쥐고 춤사위를 보이며 알 듯 모를 듯 세상을 향해 추파를 던지는 수법으로. 선배는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 선배가 선배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선배도 이제 언론인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날이 머지않았다.
오늘자(2014.7.23) 이춘호 선배 칼럼(동대구로에서-日常과 一生)을 가급적 일독해 보시라 권하고 쉽지만, 바쁜 일상에 그 또한 어려운 이들을 위해 발췌해 소개하며 갈무리하려 한다.
"우린 아직 몸만 민주적이고 맘과 영혼은 반민주적이다. 좋은 것과 옳은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민주적’이란 좋은 것을 좇는 게 아니다. 좋은 것을 옳고 바른 것으로 환원시키는 정의로운 힘이다. 좋음은 타협이 가능하지만 옳음은 좀처럼 타협이 어렵다. 간신은 좋음의 편이지만 충신은 옳음의 편이다. 그래서 충신은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죽는다. 시류는 충신과 간신을 잘 구별 못한다."
"아직도 많은 청년 백수는 ‘꿈의 직장’이 있는 줄로 착각한다. 꿈의 직장 대신 꿈의 일이 먼저여야 한다."
"‘빌어먹을 세상, 자살하고 싶다’는 이들이 있다. 그런 분에게 이순신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순신 장군보다 더 억울하면 죽어라. 이순신은 세계해전 사상 유례없는 전과를 거둔다. 23전 23승. 한산대첩에서 승리했지만 선조와 조정대신은 그를 역적으로 엄히 다스렸다. 백의종군을 선언한 이순신은 한탄스럽고 욱하는 피멍든 가슴을 다스리며 칠전량 해전에서 대패하고 남은 12척의 배를 갖고 300척이 넘는 일본 수군을 명량해전에서 박살낸다. 그리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옹달샘의 물이 강에서는 빠름을 다투지만 바다에 오면 그냥 ‘순환’할 뿐이다. 일상은 좀 더 나을 수도 있고 더 못할 수도 있다. 일상에선 웃을 수도 울 수도 있다. 일상에선 더 부자일 수도 더 가난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일상이 일생으로 진군하려면 몇 가지 ‘발효균’이 있어야 한다. 바로 꿈과 희망이다."
"우열이 있는 일상과 달리 일생은 우열과 순위가 없다."
"성격이 인격으로 승화된 사람은 어둑해 보이는 한 사람의 일생 속에서 ‘영광(빛)’을 발견해준다."
"임종 앞에 선 일생은 모두 ‘저승의 첫 단추’라는 점에서 모두 평등하다."
/심지훈2014.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