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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훈 문화칼럼] 스토리텔링과 전기A life story

스토리텔링Pro. 심지훈 2013. 4. 23. 22:10

서울 관악구청은 '어르신 전기문 후원 사업'을 통해 어르신 일대기집을 펴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스토리텔링과 전기A life story


#1. 지난주 금요일 대구에서 스토리텔링 특강을 했다. 이야기산업인 스토리텔링이 유독 대구경북에서 융성한 덕에 나름의 고수가 그동안 자리매김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대구에서 나를 불러다 강단에 세워주었으니 무척 고맙고 반가웠다. 참고로 나는 대구의 한 언론사 스토리텔링연구원 담당기자로 비교적 일찍 이야기산업 판을 들여다보았다. 그 바람에 회사까지 그만두어야 했지만, 회사 목표를 위해 져야 할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이야기산업에만 정진할 수 있어 그것을 복으로 생각한다.


#2. 대구 분들을 대상으로 스토리텔링 강의를 해야 했으니, 강의 전에 그동안 대구 스토리텔링 시장을 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몸담았던 조직의 결과물을 다시금 스캐닝해 보았다. 그동안 단행본 이야기집을 여러 권 발행했다. 그걸 구해 보았다. 그걸 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다. 스토리텔링은 '고수'의 영역인가, 아닌가-하는 문제가 하나였다. 스토리텔링 작업을 한 분들이 내로라하는 작가들이었기 때문이다. 글쓰기 고수들은 이야기산업 이정표를 잘 제시해 주고 있는가-하는 문제가 두번째였다. 이야기집을 양산해내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요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3. 조금은 다른 얘기로 들리겠지만, 이날 특강에서 책 두 권을 선물받았다. 특강에 참여한 분 중에는 언론계 선배도 있었다. 올초 서울 관악구청이 '어르신 전기 후원 사업'을 벌인 결과물이 나왔다. 그 중에 두 권을 구하고 싶었다. 김관영 어르신이 쓴 '봉사로 꽃피운 인생'과 김기선 어르신이 쓴 '서울 토박이의 현대사 여행'. 내가 애당초 이 책들을 구하려 했던 이유는, 내가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연구원의 박사님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였다. 그 책을 좀 구해주십사 부탁을 드렸고, 선배는 그 책을 이날 준 것이다. 


#4. 내가 스토리텔링Pro.(스토리텔링으로 올곧게 돈벌어 보겠다는 의미)를 자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거 돈 되겠다' '이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게 있다. 바로 전기문A life story이다. 전기는 여러모로 이야기 가공능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동안 전기는 유명인사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그들이 후대를 위해 남기는 값진 역사물이 전기였다. 하지만 양차 대전 이후, 역사는 그 값어치를 잃어버렸다. 이와 함께 그 지위는 곤두박질쳤다. 이에 따라 역사는 어느 분야에서도 이빨 빠진 호랑이마냥 비실댔다. 기껏 역사는 관광산업 분야에서 사실로서가 아니라 흥미위주로 연명하고 있다. 역사의 자리에는 기억이 힘 있게 밀고 들어왔다. 기억은 누구의 것이라도 귀한 역사를 증명해주었다. 세계사적인 사건일수록 기억은 역사를 능가했다. 일제지배의 기억, 위안부 할머니의 기억, 제주 4.3사건의 기억, 인민혁명당 사건의 기억이 그러했다.


#5. 슈밋 구글 회장은 신간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8가지 인터넷 시대를 규정했다. 그 중 하나가 '영웅을 잃은 시대'이다. 평생 저지른 잘못이 온라인에 퍼지는 시대, 과거 행적이 드러나 낙마할 정치인이 많기 때문에 예견한 것이다. 하나 영웅이 없는 시대는 반대로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삶은 누구의 것이든 귀한 것이다. 한 생을 살아냈다는 것이 점점 더 값진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개발기구 국가 중 자살률 1위는 자주 듣는 이야기여서 무감각해졌을지 모르지만, 75세 이상 어르신 자살률이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의 8.3배에 달한다는 점을 곱씹어보면 우리 국민에게 전기는 남다른 의미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6.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스토리텔링Pro.로서 내가 명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스토리텔링은 글쓰기 고수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지금 고수들은 큰 착각 속에서 이야기산업을 일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한 가지는 누군가는 이야기산업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고, 이야기산업의 전형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그 역할은 이왕이면 글쟁이가 해 주면 좋다는 것이다. 하나 이것이 스토리텔링을 글쟁이만 할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면 그건 이야기산업 전반에, 나아가 우리 후대들에게도 별로 도움될 게 없다는 점이다. 바라건대, 김관영, 김기선 어르신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일생을 되돌아보는 작업을 가가호호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후대가 스토리텔링할 수 있도록 때깔나는 멍석을 깔아주는 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Pro. 심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