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훈 문화칼럼] 주홍따오기 떼의 슬픈 비밀
[심Pro.의 사진이야기5] 주홍따오기 떼의 슬픈 비밀
한 점 유화 같다. 마치 붓으로 팔레트의 분홍 물감을 찍어 콕콕 때론 꾹꾹 찍어 바른 것 같다. 무엇을 표현한 지는 알 길이 없다. 미술관에 걸렸으니 작품이라 생각할 뿐.
예전에 인사동 갤러리에서 비슷한(?) 작품을 본 적이 있다. 떨어져 보면 하얀 바탕에 검은 점이 빼곡히 들어선 작품이었다. 제목은 '누에고치.' 하얀 누에 빈집에 검은 점을 눈같게 찍어 작품화한 것과 고치에 분홍 물감을 발라 작품화한 것 등 크게 두 종류였다.
나는 이 그림 같은 사진을 보면서 분홍 물감을 바른 '누에고치'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림이 아닌 사진이다.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다. 뭘 찍은 걸까.
제목을 들여다보자. '주홍따오기 떼.'
이 사진은 베네수엘라 야노스 지역 오리노코 강 어귀의 습지대 상공에서 찍은 것이다. 먹이 구하는 게 쉬워 이곳은 섭금류(*)들의 서식지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들의 먹이는 주로 새우, 게 같은 갑각류(**)인데 이것을 다량 섭취하면 카로틴(***)이란 성분 때문에 분홍빛깔을 띠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주홍따오기 떼는 사진처럼 무리지어 평화롭게만 살아가지 못할 운명에 처해 있다. 인간세상에서 주홍따오기의 고기와 깃털은 모두 유용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깃털은 원래 원주민들의 상의와 장식품으로 쓰였다. 요즘은 조화造花의 재료가 된다.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비행하며 강 어귀를 수놓은 주홍따오기 떼에 이렇게 슬픈 비밀이 숨어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알고 저 사진을 다시 찬찬히 보자.
왠지 모를 애잔함이 엄습해 오지 않는가.
라틴아메리카(중미와 남미)에 서식하는 주홍따오기의 개체수는 20만 마리가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섭금류= 다리, 목, 부리가 모두 길어서 물속에 있는 물고기나 벌레 따위를 잡아먹는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두루미, 백로, 해오라기 따위가 있다.
**갑각류= 갑각강의 동물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카로틴= 당근 뿌리나 고추에 많이 들어 있는 붉은빛 색소 물질로, 동물의 몸 안에서 비타민A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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