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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훈 문화칼럼] 열차무임승차 규정 바꿔야

스토리텔링Pro. 심지훈 2013. 8. 31. 12:40

#승객은 봉이 아니다.

 곧 추석이다. 이맘 때 볼 수 있는 진풍경 중에 하나는 귀성열차표 예매전쟁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 전쟁은 뉴스였다. 고향으로 가는 티켓은 바지런하거나, 운이 좋거나, 손놀림이 빠를 때만이 확보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루꼬박 줄서서 고향티켓을 구하려했지만 자기 순서에서 매진되는 건 그야말로 ‘참사’다. 허탈함에 땅바닥에 주저앉는 모습이 귀성열차표 전쟁에서 비극의 한 장면이라면, 재바른 마우스 작동으로 신의 한 수를 보여주며 티켓을 낚아 챈 모습은 희극의 한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희비가 교차하는 지점에는 타인을 탓하거나 '철도청(코레일)'을 원망하는 일은 없다. 아쉬움과 울분이 있을 뿐이다. 이 감정은 스스로 떨쳐버려야 할 사소한 숙제다.


 그런데 필자가 엊그제 겪은 티켓 예매의 경우는 원망과 울분의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철도청’ 공무원 김태연씨는 대한민국의 작가인 나를, 문화 시민인 나를 부도덕한 시민의 하나로 몰아갔다. 

 이 황당하고도 울화통 터지는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13년 8월 29일 나는 김천에서 동대구행 무궁화 12시 32분 열차를 예매하였다. 나는 이 열차를 혼신의 힘을 다해 내달려 간발의 차로 탈 수 있었다. 그런데 뛰어오르다 스마트폰으로 예매한 차표를 반환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나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이 점을 승무원 김태연씨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무임승차를 고지하며 부과금을 내야한다고 하였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더욱더 당황스럽고 황당한 것은 부과금이 열차이용금의 0.5배라는 거였다. 4,500원 무궁화호가 졸지에 6,700원 동(同)구간 새마을호 값으로 둔갑하였다. 

 나는 김태연씨에게 따져 물었다. 그는 무임승차 시 승객이 고지하면 0.5배를, 승무원 적발시엔 1배를 물어야한다는 규정을 들어 부과금을 무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일단 신용카드를 내주었다. 그런데 나는 이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었다. 

 무임승차라 함은 “승객이 고의로 차표를 끊지 않은 채 열차를 무료로 이용하려는 것”으로, 이는 범법 행위에 해당한다. 

 나는 법을 위반할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 한순간에 골리앗 같은 ‘규정’으로 사람을 옭아 묶은 뒤 범법자를 만들어버리니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올랐다.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자기는 규정대로 한 것이니 딴 데 가서 해결해 보라고 하였다. 

 나는 독이 올랐다. 이제 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존심의 문제이고, 내게 동의를 구한 적 없는 규정을 내세워 승객을 봉으로 아는 승무원 김태연씨를 가만 두고 볼 수 없었다. 


 철도청 대표전화로 문의하였다. 김태연씨와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 같은 고객이 천지란다. 그러니 억울해도 어쩔 수 없고, 억울해도 말라는 얘기다. 뭐 이런 ‘철도청’이 있는가. 고객의 불편이 그만큼 흔하다면 규정을 바꾸든지 예외규정을 두어 고의성 여부에 따라 고객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구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대구역 플랫폼 승무원에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해 보았다. 이 경우는 벌금을 부과하기 애매한 상황이라 하였다. 그렇지만 팔은 안으로 굽었다. 역시 규정 얘기였다. 

 나는 김천역에 내려 매표창구로 갔다. 그리고 당당하게 부과금 반환을 요구하였다. 그랬더니 김천역 승무원은 “동대구역에서 환불받았어야 했다.”고 내게 과실을 돌렸다. 세상에 코레일이 김천 따로 동대구 따로였단 말인가. 그러면 김천에서 예매한 차표는 취소도 김천에서만 해야 한다는 것인가. 나는 언성을 높여 되물었다. “언제부터 코레일이 김천 따로 동대구 따로였습니까!”

 창구가 시끄러워지자 사무실에서 사람이 나왔다. 사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며 나를 데려갔다. 나는 사무실에서 또 한 번 전후 사정을 설명하였다. 계장이란 사람은 “어쨌든 고객님의 실수로 무임승차를 한 것은 사실 아니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쨌든 한 번은 결제해야하는데 차표가 없으니 결제를 해야 하고 무임승차니까 벌금을 무는 건 당연하다.”고 하였다. 

 이 말은 정말이지 고객을, 아니 문화시민인 나를 호구로 대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계장에게 나는 문제를 하나 내주었다. 

 “미국, 일본, 독일, 우리나라 철도의 특징이 뭔지 아세요?” 

 계장은 답을 하지 못하였다. 내가 답을 알려주었다. 

 “무표시스템으로 운영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계장에게 “무표시스템이 가능한 나라는 시민의식, 질서수준이 높고 그것은 대체로 소득수준에 비례한다.”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나라는 공히 경제규모 15위권의 나라이고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한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면 각종 인프라가 향상된다. 더불어 시민의식도 성숙해진다. 

 ‘철도청’ 공무원은 무임승차 개념을 전근대적 사고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 같은 승객과 충돌한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무임승차 개념이 표를 소지하고 탔나 안 탔나로 규정짓는 시대는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열차표 없이 열차를 이용한다. 우리가 집에서 뽑는 종이는 열차표가 아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예매한 것은 전통적인 표가 아니다. 그건 단순히 내 자리가 어디인가를 확인하는 ‘메모지’일 뿐이다. 

 실제 승무원들도 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자그마한 PDF 기계를 들고 다니며 승객의 자리를 확인할 뿐이다. 그러다 기계상으로 빈자인데 자리를 채우고 있으면 그걸 확인한다. 입석자라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고는 하지 않는다. 고객의 ‘표’가 아니라 ‘자리’를 확인하면 그만인 것이다.

 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젊은 여승무원은 수긍하였다. 그래서 부과금 2,200원을 환불해 주었다. 충분히 화가 날 상황이라는 점을 그녀는 이해하였다. 그녀가 대신 사과하였다. 


 나는 이것이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나만큼 논리를 갖추지 못한 승객은 ‘멍텅구리’ 규정 탓에 화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이건 벌금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한 인격체의 도덕성과 준법정신을 매도하는 일이다.

 따라서 문화시민을 졸지에 범법자로 만드는 규정을 바꾸던가, 아니면 예외규정을 두어야 마땅히 옳다.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철도와 철도청의 존재 이유가 승객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승객 괴롭힘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철도는 승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철도청 직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승객은 철도청의 봉이 아니다. 

 이름만 현대화된 ‘코레일’이면 뭐하나, 사고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철도청’인 것을.

/심보통201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