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훈 희망칼럼9] 인간관계 이렇게 하라
#인간관계
옛 어른들은 글자는 못 깨우쳤어도 현대인들보다 탁월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사람을 보는 눈이다. 이건 시대 상황과 직결된다. 다시 말해 사회적 환경이 사람 보는 안목을 키우게 했다는 것이다. 나의 부모님 세대만 해도 공동체사회에 익숙하다. 가족공동체, 학교공동체, 직장공동체. 이걸 우리는 공히 운명공동체라 부를 수 있다. 사람과 부대끼면서 웃고 울고 핏대올려 싸우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부모 세대만 해도 강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연초나 개인사가 안 풀릴 때 찾는 역술원이나 무당집을 가지 않아도 옛 어른들은 관상을 볼 줄 알았다. 주역은 인간세계의 과학원리를 통해 사람의 점괘를 뽑아낸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체계화된 확률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술인이 아니어도 무당이 아니어도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생긴 꼴과 하는 폼새, 말투를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려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실상이 그렇다.
하나 오늘날처럼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사람을 눈여겨볼 기회가 없다. 그러니 사람을 볼 줄 모른다. 이를테면 미간이 좁으면 속이 좁다든지, 귀가 뒤로 젖혀 있으면 고집불통이라든지, 광대뼈가 과하게 튀어나오면 욕심이 많다고 본다든지 하는 식은 사람을 보는 관상법의 일환이다. 거기다 말씨, 폼새까지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의 인성(바닥)까지도 가늠할 수 있다. 심지어 상대의 부모 직업까지 스캐닝(scanning)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참고할 사항이지, 절대적인 신념의 차원으로 여겨선 곤란하다. 현대인은 인간관계로 상처받는다는 말을 곧잘 한다. 그런데 상처받는다는 말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본인이 상처받았다면, 타자도 그럴 확률이 높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한쪽이 뒤틀리면 필시 다른 쪽도 뒤틀리기 일쑤이다.
서울에 1년 살면서 오랫만에 대학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직장생활에 매우 불만족스러워했다. 사장부터 동료까지 마음에 드는 이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 깍쨍들'이라고 한방에 전 사원을 보내버렸다. 그는 직장 내에서 동료들과 말을 섞지 않는다고 한다. 앞과 뒤가 달라 늘 뒤통수 맞고, 손해 보는 건 자신이기 때문이란다. 하나 이건 애오라지 선배의 처세술 부족 탓이다.
처세술의 첫걸음도 상대를 읽는 것부터다. 상대를 알고 대하려면 내가 상대를 알아보는 것만큼이나 당장 내가 얼마만큼 유연한 사람인가도 중요하다. 우리는 쉽게 사람은 늘 한결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단언컨대 틀렸다. 사람은 한결같을 수 없다. 한 인격체의 본성은 늘 한결같을 수 있으되, 외형은 카멜레온 같아야 그게 훌륭한 사람이다.
동료를 대할 때와 직장의 오너를 대할 때 말투와 자세가 같다면 그 사람은 근본이 안 된 사람이다. 오너 앞에서 더 고개를 숙인다고 그 사람이 직장생활 잘 한다고 평가하는 사람 역시 모자란 사람이다. 그건 사회생활하면서 지켜야 할 하나의 예의일 뿐이다.
불사선악이란 말이 있다. 나한테 잘하면 좋은 사람, 나한테 못하면 나쁜 사람이란 뜻으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21명을 살해한 유영철에게도 친구가 있다. 그 악마라고 규정지은 이에게 친구란 무엇인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친구란 사람이 이상한 것인가. 꼭 그렇지 않다. 유유상종이란 옛말에 빗대면 그 친구도 그다지 인품이 훌륭하지 않을지 모르나 유영철의 불알친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영철도 태어나면서부터 범죄자는 아니었을 테니까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과 선긋기하는 것만큼 우둔한 게 없다. 기분 나쁘다고, 내 뒤통수쳤다고 안 보면 그만이지 해도 세상은 정말이지 너무 좁다. 한국사회는 네트워크가 세 다리(최대 여섯 다리) 건너면 다 만나게 되어 있다. 그만큼 행실과 처신이 중요하다. 우리 인간세상은 신이 만든 요지경 동화세상이라고 보면 된다. 신이 심심해 잘난 사람도 만들고, 못난 사람도 만들고, 착한 사람도 만들고, 악한 사람도 만들고, 효자도 만들고, 효녀도 만든 것이다. 또 공부머리는 좋아도 사회머리는 나쁜 사람도 만들고, 공부머리는 나빠도 사회머리는 탁월한 사람도 만든 것이다.
그 신이 만든 요지경 세상 속에서 우리는 뒤섞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다들 잘 살겠다고 옥신각신한다. 그런데 그 속에 이기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니 매사 술술 풀릴 리가 없다. 그래서 상대를 알고 대하는 것이 인간세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말을 가려야 하는 것도 상대에 따라 다르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내 속마음의 바닥까지 드러내 보일 수 있다. 하나 현대인은 그게 어렵다.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건 정확하게 말하면, 상대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인간관계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러려면 그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에 앞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부터 잘 알아야 한다. 이걸 불교식으로 말하면 관觀 한다는 것이고, 철학으로 말하면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갈파한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귀하는 귀하가 어떤 사람인지 곰곰히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나를 정의해 보고 개념화해 보는 일은 우리 삶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삶, 넉넉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해 보아야 한다. 예컨대 나는 정직한 사람이다. 나는 워커홀릭이다. 나는 통이 큰 편이다.- 같은 나란 사람을 스스로 규정해 보는 일은 인간관계를 위해서 필수이다. 그래야 나는 어떤 사람을 친구로 사귈 것인가, 어떤 어른을 모실 것인가가 판가름난다.
그럼 나는 누구를 통해, 어디서 나름의 인간관계 원칙을 세웠는가. 부모님을 통해서도 배웠지만, 직장생활하면서 대구지방경찰청 양보석 경감님과 인연을 맺은 뒤 그 분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일상생활(직장생활)에 투영시켰다. 말했다시피 인격체의 본성은 바뀌지 않지만, 외형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바뀌어도 내 본성을 바탕으로 바뀌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기자 시절 인간관계론)
1. 내 자신에 대해 관하기= 나는 직설적이고, 화통하다. 호불호가 분명하다. 비겁한 걸 싫어한다. 말 바꾸기를 혐오한다. 얕은 게 싫다. 공통분모는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기질이 남들에 비해 강하다.
2. 주변인들= 동료, 공직자, 기타군
3. 인물군= 유하면서 강직한 사람, 화통하고 강하면서 강직한 사람, 이도저도 아닌 사람, 나를 사무적으로 대하는 사람, 나를 귀찮아하는 사람
4. 관계론 속 운동원리= 제보자, 신문구독 확장자, 광고 도움줄 사람, 술 친구, 대화 상대
이렇게 네 부류로 나누어 놓고 보면, 실생활에서 어떤 사람이 불사선악 중 나한테 좋은 사람인지 가려낼 수 있다. 내 기질과 맞는 사람은 유하면서 강직한 사람, 화통하고 강하면서 강직한 사람이다. 그 중에 내가 도움이 필요로 할 때 손을 내밀 때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화통하고 강하면서 강직한 사람뿐이었다.
유하면서 강직한 사람은 신문 1부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건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게 그 사람 깜냥대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마음을 내어줄 때 마음을 받겠다고 내어주는 건 모자란 사람의 처신이다. 하나 조건없이 큰 도움을 주었다가 막상 신문 1부 확장하는 대목에서 슬금슬금 빼는 모양새를 취하면 그건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다.
내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준 양보석 경감님은 다혈질이다. 정의로운 분이다. 보기에 따라 별난사람이라고 할 지도 모른다. 하나 그 분이야말로 이 시대의 보석 같은 분이다. 경우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오랜 수사 경험과 숱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익힌 것도 있겠지만, 마음 수양을 통해 세상을 관조하는 눈이 탁월한 분이다.
내 중심이 바로 서 있으면 어떤 사람과 맞붙어도 흔들릴 것이 없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중심으로 틀을 짜게 되어 있다. 누구나 세상의 주연이고 싶지, 조연이나 하고 단역이나 하려고 인생을 살아가지 않는다. 무턱대고 권력이라고 그 앞에 고개 조아릴 필요도 없다. 세상은 만들려는 자의 몫이다. 그것이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려면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얻어야 한다. 사람 얻기는 일상에서 시작된다.
정리하자. 행복한 삶, 넉넉한 삶을 위한 인간관계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첫째,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
둘째, 상대를 볼 줄 알아야 한다.(알고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타자와 선긋기보다 나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가려 뽑아야 한다.(이게 본디 의미의 유유상종이다.)
넷째,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붕 뜨면 안 된다. 자만하면 안 된다. 그래서 마음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다섯째,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갖고 남 탓 하는 건 수양이 덜 된 사람의 행동양식이다.
사진=팔공산 관음사 가는 길목에 선 나무가 꼭 입술 같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는 착한데, 남이 못되서 세상이 어지럽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뽀뽀(사랑) 받고 싶어한다. 너그럽지 못하다 자각하지 못하는 것도 무지의 소치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