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3.10
*계족산의 봄맛
어제 점심 땐 부러 계족산으로 향했다.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봄맛도 보고 봄소리도 듣고 싶었다.
계족산은 황톳길로 유명하다. 대전지역 소주회사가 나서 계족산을 황토로 입혔다. 명소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주말이면 산사음악회도 열린다.
황톳길을 걷고 나면, 그 다음은 옛 백제의 산성 터가 열 배의 기쁨을 선사한다. 좁장한 산길을 15분 오르면 산성 터에 다다른다. 대전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간다. 숨구멍이 탁 트인다. 현대인들에게 카타르시스만큼 고마운 선물이 있을까.
헌데 나는 얼마 전부터 계족산 초입에 머무르고 만다. 대전역 방향에서 탄약부대를 굽이돌아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면 계족산 황톳길 방향인데, 나는 직진해 '감나무 보리밥집' 앞에 차를 세운다.
금강산도 식후경. 5,000원하는 보리밥 한 그릇 먹는다. 내가 먹어 본 보리밥 중 최고다. 국산재료만 쓰는 지 나물들이 죄다 옛 시골반찬처럼 보드랍다. 이런 게 참 봄맛이지 싶다.
하나 계산할 때 나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고마운 마음으로 현금 5,000원을 놓고 가만히 나온다. 자갈 깔린 마당에 감나무가 우뚝 선 이 식당은 모자가 운영한다. 모친이 주방을, 아들이 홀을 담당한다.
배도 부르겠다, 볕도 좋겠다 이제부터 계족산을 느낄 시간이다. 보리밥집 건너는 여적 전형적인 시골 모습이다. 넓은 들이 초록을 머금고 제법 넓게 펼쳐져 있다. 봄소리에 가만 귀기울인다. 그곳엔 밭두렁이 있고, 논두렁이 있다. 생태하천 조성사업이 한창인 이곳은 운동시설도 있고, 흔들의자도 있다.
어제는 고개를 숙이고 밭두렁을 꼭꼭 밟으며 걸었다. 홀연 고개를 들었다. 저쪽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새 하얀 수건 고깔처럼 두르고, 호미 낫 든 망탱이(소쿠리) 들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멈추어 서서 13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매를 한참이나 보았다. 이 봄, 밭두렁을 찾아 걷자. 자연의 참 경이를 비로소 느낄 수 있으리. 누구나 옛 추억이 하나쯤은 스멀스멀 피어나리.
/심보통2017.3.25
'마실에서 본 한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지훈 문화칼럼] 탄핵 단상 (0) | 2017.03.24 |
---|---|
[심지훈 문화칼럼] 행복등가론 (0) | 2017.03.07 |
[심지훈 문화칼럼] 덕치와 행실 (0) | 2016.07.26 |
[심지훈 문화칼럼] <영향>-대한민국 편집국에 바람 (0) | 2016.07.12 |
[심지훈 문화칼럼] 착각사회 (0) | 2016.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