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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선배先輩


#선배先輩 
선배先輩는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ㆍ학예(學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이란 뜻이다. 
어쩌다 보니, 유명상이란 언론계 선배를 만났다. 그의 열정에 매료돼 내 뜻을 물리고 한국일보 대구본부 호에 올라탔다. 그의 열정과 비전은 명확했다. 문제는 너무 높다는 데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명상을 '미친 놈'이라고도 했다.
나는 달리 봤다. 그 열정과 비전이라면 최종 목표점까지는 늦게 도달하거나 혹은 가지 못하더라도 범인들과 비할 수 없는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그래서 힘을 보태기로 했다.
2년이 흘러 한국일보 새 주인이 나타났다. 유명상 선배의 숙원 중 하나였던 지방본부 독립법인(한국일보 대구본부-->대구한국일보)을 이뤘다. 한국언론사의 새 역사다. 
체제가 정비됐다. 아니, 정비'되어' 왔다. 나는 그게 마뜩잖았다. 독립법인 이전에도 '우리'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했고, 독립법인이 된 지금에도 '우리'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해야 마땅하다. 
나는 유명상 호가 새 경영진에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받았다. 선배들도 속수무책인 것 같았다. 유명상 선배도 정신이 없어 보였다. 
대화를 해 봤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해했다. 그래도 나는 기본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명상 선배는 체질 개선을 고심했다. 큰 폭의 소통을 시작했다. 워크숍을 시작한 건 그래서다. 
나는 두 번째 워크숍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작심 배경이 있었다. 한국일보 이영성 부사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고 서다. '작년 두 자릿수 임금인상에 이어 올해도 두 자릿수 인상을 받았들였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는 경영진들이 수익부담을 떠안고, 후배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래, 바른 선배라면 이래야지!'
그 무렵, 한국일보 본사에서 대구한국일보로 조직도가 내려왔다. 기자들 단톡방에 공지됐다. 파일을 열어봤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 이게 뭐지...' 대구한국일보의 구조를 파악한 조직도가 아니었다. 무늬만 조직도였다.
그래도 문제는 본사에 있다고 할 수 없었다. 본질적으로 문제는 '우리'였다. 두 번째 워크숍 전날 밤, 유명상 선배는 또 한번 안타까움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았다. 마음이 아팠다. 뻔한 마음, 동떨어진 현실. 나는 전화를 끊고, 고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야밤에 펜을 들었다. 슬금슬금 그림을 그려갔다. 조직도였다. 이러면 체질개선이 되지 않을까. 권한, 분업, 수익. 세 가지를 두루 고려했다.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바로 '우리들'이었다. 아무리 좋은 체계면 뭘하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허사인걸. 
내가 변방에서 선후배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그들은 내 진심을 얼마나 알아줄까. 일단 진심만 보여보기로 했다. 현실문제를 성토했다. 숙연해졌다. 워크숍이 끝나고, 이정훈 선배가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선배도 진심으로 몇 가지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자네가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3주가 지났다. 내가 오해했다. 기우였다. 우리들은 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절절한 '우리들'의 마음. 참으로 고운 마음, 나는 그걸 잘 꿰기로 했다. 
나는 조직쇄신안 카드를 내밀고, 종횡으로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쇄신의 범위와 깊이는 정해두지 않았다. 쇄신에 가이드라인을 준다는 건 실패를 기정사실화하는 일이었다.
'우리들'은 해제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매체'가 되는 방식으로. 내가 경험한 유명상 선배는 매번 옳았고, 또 옳았다. 이번에 내가 거둔 결실은 대구한국일보 식구 모두가 옳은 방향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전준호 선배가 "수고많데이"라고 격려했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은 진즉에 대구한국일보 식구들 품에 안기셨다. 대구한국일보는 지난 3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전 직원이 팔공산 갓바위를 오르고 있다. 
유명상 선배는 갓바위에서 웃통을 벗고 팔공산의 정기를 양껏 받아들인다. 그걸 본 김성웅 선배는 "대표님이 저렇게 정기를 끌어 모으시니, 우리 조직이 이렇게 버틴다"고 유쾌한 진단을 내렸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 했다. 대구한국일보는 3월에 이미 통(通)하였다. 쭉쭉 흐를 일만 남았다.
나는 예상한다. 대구한국일보는 머지않아 지역 1등이 될 것이고, 한국일보는 10년 내 1등 신문에 등극할 것이다. 언론밥 10년이면, 반은 점쟁이다. 맞나, 틀리나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심지훈 대구한국일보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2016.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