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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싸부' 황태순(정치평론가)


‪#‎'싸부‬ 황태순'(정치평론가)
오늘 황태순 선배께 전화를 드렸다. 조만간 찾아 뵙겠다고. 
황 선배는 한때 내가 '싸부'로 모셨던 분이다. 2011년 1월 14일(사진) 밤, 서울프레스센터 뒷골목을 매섭게 가르는 칼바람을 뒤로 하고, 사케집으로 들어갔다. 
신문사를 퇴사하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영남일보 서울식구들한테 인사하러 갔다, 송국건 본부장(영남일보 서울정치본부)의 주선으로 황 선배와 함께하게 됐다.
나는 당시 '아주 잘 났었'다. 잘났던 나는 속사포처럼 내 생각을 이야기했고, 한참 듣던 황 선배는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얌마! 볼펜하고 수첩 빼 봐."
정말이지 코가 막히고, 귀가 막혔다. 화를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 헷갈렸다. 같이 한 선배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빨리 펜, 수첩 내놔보래도."
나는 어떨결에 수첩과 펜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황 선배는 넉 자를 썼다.

和而不同.

그리고 아래 '심지훈 님에게'라고 썼다. 때렸으되 예의를 갖췄다. 금세 선배가 좋아졌다.
그는 내게 "자네는 가슴으로 이 넉자를 새기게. 자네 똑똑한 건 내 이미 아네."
황 선배는 퇴직금을 갖고 모스크바, 시베리아로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다. 다녀와서 다시 보자고 했다. 
나는 시베리아를 횡단하지 못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5년이 흘렀다. 이제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화이부동 덕분에 저가 잘 안착했습니다. 조만간 한 번 뵙겠습니다." 
"그래, 좋아."
황 선배는 방송준비로 바빠 보였다.
살다보면, 스쳐가는 인연일지도 모르는 이가 목숨을 살려놓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 같다. 
황 선배는 내 목숨을 살려줬으니, 다시 '싸부'로 모셔야겠다. 
/심지훈 2016.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