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수향재(守鄕齋)

@황계서실, 심지훈2016.6.16


#수향재(守鄕齋)
아버지는 생전에 우리집 첫 인상은 '고고한 소나무'라고 말씀하셨다. 검정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버지 방 앞에 나즈막히 서 있는 소나무가 우리집 상징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 소나무는 어느 해 겨울,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고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두 해 지나 아버지는 묘목원을 운영하는 작은아버지에게 말해 또 한 그루의 소나무를 가져와 식재하셨다. 
그 소나무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3년이 지나도록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 생전에 소나무 위에 새집을 하나 얹어 놓았는데, 신기하게도 봄날이면 부부 새가 날아들어 새끼를 치고, 때가 되면 날아간다. 올해는 둥지가 텅텅 비었지만, 새집이 불안하게 뒤틀려서 그랬던 게 아닌가 하고 얼마 전 단단하게 바로 세워주었다.
엊그제 회사 미팅이 늦어져 새날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오다가 도저히 몸이 버텨내질 못할 것 같아, 김천에서 내려 고향집에서 잤다. 기차간에서 잠들면 그대로 서울까지 가버릴 것 같아 구미역에서부터 30분을 버틴 끝에 김천에 내린 것이었다.
어찌 잠든 지도 모르게 골아떨어져 다음 날, 이른아침 깨어 내가 좋아하는 우리집 마당을 거닐며 스마트폰에 <황계서실 6월>을 담았다.
대문 밖을 나서자 분홍인동초 달달한 내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사람들은 음각전서로 새긴 수향재나 양각전서로 새긴 황계서실에 시선이 빼앗기겠지만, 나는 이 인동초 한송이에 마음이 빼앗겼다. 한참을 바라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두 번 찍었는데 한 번은 인동초에, 또 한 번은 현판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둘다 느낌이 좋다. 
아버지께서 남겨 놓은 귀한 선물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가슴 사무치도록 그립다. 
나는 고향집을 올 적마다 남은 생 죽을 힘을 다해 살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는 날, 아버지 넓은 가슴에 기쁘게 안기려고 말이다.
/심지훈 2016.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