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빨강우산, 노랑우산, 찢어진 우산...'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닌 적이 있다. 노래가 시대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이 노래는 당시 시대상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우산은 좋은 선물이었다. 특히 결혼식이나 회갑년 같은 좋은 날 답례품은 우산이 단골이었다.
옛날 우산은 쉬이 부러지기 일쑤였다. 대가 대나무고 커버가 푸른 비닐인 것도 있었다. 세찬바람 한 번 직격탄으로 맞으면 금세 대가 날아가고, 살이 찢겨졌다. 그런 우산이 널리 쓰였다.
그래서 찢어진 우산도 우산 축에 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노랑우산은 '순수함의 상징'과도 같았다. 노랑우산에 노랑장화까지 갖췄으면 좀 사는 집 아이였다. 빨강우산은 나이 꾀나 잡순(?) 형 누나들의 전유물이었다. 노랑은 젓비린내 나는 것(!)들의 애용품이었기에!
세상은 변했다. 우산에도 예술을 입히는 세상이다. 노랑우산, 빨랑우산의 구분은 무의미해진지 오래다. 찢어진 우산은 우산 축에 끼지도 못한다.
뭉크의 <절규> 정도 들어야 "아~ 우산이구나!" 대접받는 세상이다. 참 곱다. 우산으로도 가슴을 때릴 수 있구나를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알게 되었다. 부산시립미술관 전시용품 판매점은 또다른 전시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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