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0일은 애국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뭇국민들에게 특별했던 달로 기억될 듯하다. 대한민국 통치권자로는 처음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에 있는 외로운 섬, 독도獨島를 방문했기 때문이다.(국가수반격인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1962년 10월 방문한 것을 감안할 경우 50년 만이다.)
독도가 우리 민족에게 무엇이던가. 우리의 주권 상징이 아니었던가. 그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는 국민이라면 독도를 이야기할 때마다 가슴이 애잔해 올 것이다. 그동안 우리 대통령들은 왜 지척인 우리 땅을 마음대로 밟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마침내 독도 땅을 밟은 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천명한 우리 대통령이 왜 일본으로부터 항의를 받아야하는 걸까. 우리는 왜 일본에 대해 "그만 닥치시오!"라고 시원하게 일갈一喝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 국민들 중 이 쏟아지는 물음에 시원하게 답해 줄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한-일간 독도 논쟁은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에 대한 문책 결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됨으로써 이제 한풀 꺾인 기색이 영력하지만, 일거에 쏟아진 독도 논쟁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기억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한다.<편집자 註>
# MB 독도 방문 10일 전
외교통상부로서는 깜짝 놀랐으면서도 난처했을 것이다. MB의 독도 방문 소식 말이다. 알려진 대로라면 MB는 수시로 독도 방문을 입에 담았고, 외교부는 그럴 때마다 '일본의 독도 분쟁 지역화 전략에 말리는 것'이란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MB는 직접 '각본-연출-주연'을 맡아 2012년 8월 10일 독도를 전격 방문키로 결정한다. 왜 그랬을까. 굳이 역대 대통령이 하지 않았던 일을 수고스럽게 한 까닭은 무엇일까.
독도를 다녀온 지 사흘 째 되던 날, MB는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국회의장단 상견례 자리에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MB는 독도 문제를 영토 문제를 넘어 과거사 문제로까지 확대한 셈이다.
이를 반영한듯 청와대 대변인실은 13일 대통령이 "굳이 갈 필요가 있으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교토에서 오히려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얘기해 한 시간 동안 설득한 적이 있다. 일본과 같은 대국이 마음만 먹으면 풀 수 있는데 일본 내 정치문제로 인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도 했다.
사실 이 대목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2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진입한 대한민국의 위상이 일본을 상대로 '영향력'을 운운할 만큼 커졌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일본을 능가할 만큼의 국력을 가지게 됐다는 아니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소신 있게 할 소리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 있고 뜻깊은 일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니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 그러면 왜 이제껏 일본의 억지에 짐짓 모로쇠로 일관해야 했던 것일까. 바로 국력, 힘이 약해서였다.
MB는 독도에서 78분 가량 머물렀고, 독도경비대에게 "우리 국토의 동단에 있는 게 독도 아닌가. 동단의 독도를 잘 지켜달라"며 독도가 우리 땅임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일제 하에서 36년이란 치욕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이 대목에 밑줄부터 긋고 봐야 마땅하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고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첫 번째로 날름 삼켜버린 것이 바로 외로운 섬, 독도였기 때문이다. 독도가 우리에게 주권의 상징으로 우뚝 서게 된 이유다.
그 주권의 상징을 '볼모'로 일본은 오랫동안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왔다. 이제 일본의 이 같은 주장에 어떤 방식으로든 맞서는 것이 우리 외교부의 연례행사가 돼버렸다. 2012년 8월의 첫 날 전해진 소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본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이 담긴 2012년판 방위백서를 외신기자에게 뿌렸고, 우리 외교부는 이에 대해 "즉각 시정을 촉구한다"며 강력 항의했다. 방위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일본)의 고유영토인 북방영토(쿠릴 열도의 일본명)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 표현은 2005년(자민당 정권 시절)부터 8년째 유지돼 오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영토 문제와 관련, 2005년 이후 '다케시마와 북방 영토는 우리나라 고유 영토'란 기술을 해오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외신기자들을 통해 이 같은 허위 사실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꼼수가 읽힌다.
이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즉각 항의했다. 구라이 다카시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유감을 표명했다. 우리 정부의 엄중한 항의 입장을 담은 구상서(외교문서)도 전달했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한 일간지는 지난해 '방위백서' 발표 때에 비해 대응 수위를 다소 높인 것으로 평가했다. 외교부의 경우 지난해엔 대변인 논평을 냈으나 올해는 성명으로 부분 격상한 점, 지난해엔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를 불렀으나 이번에는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했다는 점 등을 들어서다.
무릇 한바탕 소용돌이가 물러가면 폐허에선 잔상이 남기 마련이다. MB의 독도 방문이 외교부와 사전조율 되지 않았을 리 없다는 데 심증적 한 표가 간다. 외교부가 빠지고, 청와대 의전과 경호.홍보라인이 주도한 데는 한-일 외교를 감안한 조치였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2012 방위백서 항의법에 논평을 성명으로, 공사 대신 총괄공사를 호출한 점 등도 MB식 독도 외교의 사전 셈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실은 훗날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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