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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사회학.com/미디어 프리즘

[미디어窓] 청문회


때 지난 신문읽기 단상(1) 청문회

김황식 국무총리, 양승태 대법원장, 이용섭 민주통합당 의원. 이들에게 '청문회의 귀재'라면 당사자들은 섭섭하게 생각할 게다. 한 평생 누구보다 떳떳하게 살아왔으니 고위공직자 검증에서 무사히 통과했기 때문이다.

위 세 사람은 모두 세 번의 청문회를 거쳤다. 김황식 총리는 대법관-감사원장-총리를 거치면서 청문회를 통과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관-중앙선관위원장-대법원장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했다. 이용섭 의원은 김대중 정부 때 국세청장을, 노무현 정부 땐 행자부 장관과 건교부 장관을 지냈다.

이들은 적어도 우리 사회 모범시민이요, 모범공직자라 할 만하다. 사실 우리나라 인사청문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000년 6월에 도입됐다. 2005년 7월에 전 국무위원 대상으로 확장됐다. 최근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낙마사태가 있기 전까지 5~6건만 의혹이 제기돼도 당사자는 큰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무려 30여 가지 의혹을 보였던 이동흡은 앞으로 어쩌면 고위공직자 청문회에 관한한 '문제 있음'의 기준을 매우 낮춰(?) 놓은 당사자가 될 확률이 높다. 우리 사회 풍토를 고려하면 그렇다. 아마 '흡31'은 우리 사회에서 반면교사가 되기보다는 '흡은 더했는데, 이게 뭘 하는...' 도덕적 해이의 산물로 회자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란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은 전 언론이 '등잔 밑이 어두웠다'고 실토할 만큼 예견하지 못한 박근혜의 한 수였다. 그런 만큼 언론의 조명은 더 뜨거웠고, 그랬기에 그의 낙마는 언론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법조인으로서는 모범된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법치주의자로 통했다. 모든 걸 법으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법조계 내부에선 격의가 없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래서 인기가 좋았다. 후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나 역대 최고령 인수위원장으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그는 '법치'에 자승자박됐다. 

재산의혹으로 낙마하면서 인생이 송두리째 뽑히는 듯한 아찔함을 맛봤을 것이다. 비단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그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가족사가 들춰지고, 두 아들의 아킬레스 건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이혼 위기에 처했다'는 그의 얘기는 빈말이 아닐 것이다. 

이러니 대통령의 인사 최우선 순위가 청문회 통과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당수는 아예 국무위원 후보자를 고사한다고 한다. 3자가 듣기에는 이유가 가관이다. "마누라가 하지 말라고 해서"란다. 어떤 이는 "마누라가 하면 당장 이혼한다고 해서"라고 무시무시한 이유를 댄다.

후보자가 되어 난타 당하는 사람들과는 별개로 고사하는 이유가 가관인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어떠해야 할까. 국가관이 부족해서라고 단칼에 처버려도 될까. 의혹 투성이로 살아온 사람이나, 인생의 한 두 점 잘못 찍어 장관 한 번 하려다 망신살 뻗친 사람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민주국가에서 시민은 국무위원 후보자의 어디까지를 알아야 하는가. 나는 이게 궁금하다. 후보자의 삶 뿐 아니라 그 가족, 인척, 친척의 삶을 그물망으로 건져올려 발가벗겨 보는 게 청문회는 아닐성 싶어하는 말이다. 이게 인사검증 시스템으로 제대로 걸러지는 것인지, '표적'이 정해지면 개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어 죽이고 보자는 것인지 도무지 헷갈려 하는 말이다.

예전에 베트남 전쟁 추가파병 문제를 앞두고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이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한 일이 있다.(1965.5.16~25) 당시 미국 특파원으로 있던 김성진 전 문공부 장관은 이런 일화를 남겼다. 

"정상회담이 시작되자 취재기자들은 회담 장소의 문턱에서 모두 뒤로 돌아서야 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공개한 것과는 딴판이었다. 여기서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제도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운영 절차의 냉엄한 경계선을 목도했다. 민주주의제도의 현장을 언론이 어디까지 목격하고 취재할 수 있는가? 무제한 완전공개인가, 아닌가? 나는 민주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심장부 백악관에서 처음으로 그 한계선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청문회는 후보자의 치부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인가, 그의 능력을 검증하려 하는 것인가. 어디까지를 봐주고, 어디까지를 눈 감아 줄 것인가. 정치권의 놀음에 국민들까지 덩달아 놀아나는 것 같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두 번째 후보자 검증은 널널하게 한다는 것이 관행이란다. 우리는 그 놈의 관행에 치를 떨고 분노하면서, 이 놈의 관행에는 너무나도 관대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