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신비한 저녁이 오다
“소소한 일상을 섬세한 詩語로”
강문숙 시인 네 번째 시집 발간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원래 강문숙(62) 시인이 장시(長詩)를 즐기는지는 모르겠다. 알아보지 않았다. 굳이 알아 볼 필요는 못 느꼈다. 다만 네 번째 시집은 앞의 세 시집과는 다를 것이라고 시를 가만가만 받아들이며 느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시가 길고 짧은 건 중요치 않다. 얼마나 독자의 마음을 훔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네 일상사를 관조하는 힘이 대단하다. 작년에 환갑을 넘어 “그렇다” 한다면, 시인에게 큰 결례를 하는 것이겠다. 환갑을 넘긴 세상 모든 이가 삶을 들여다보는 힘이 대단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신비한 저녁이 오다’는 난해하거나 어설프지 않아서 좋다. 주제가 소소해서 좋고, 친근해서 좋다. 시인의 이야기가 곧 우리네 이야기여서도 좋다. 추천의 말을 내어준 황동규 시인(서울대 명예교수)의 말대로 “시를 위한 시를 만들지 않고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시로 형상시켜” 좋다. 일상이 시고, 시가 일상이라면 뭇 독자도 가까이 두고 볼 일이다. 어떤 시는 웃기고, 어떤 시는 슬프고, 또 어떤 시는 ‘웃프다’. 무엇보다 교훈적이다. 시의 존재 가치를 시로써 증명하고 있다.
삭은 전깃줄 뭉치같이 웅크린 노인들, 몰래 한숨을 섞던 간호사 필요 이상의 큰소리로 아버지 이름 부른다/ 대신 결과 부러 왔는데요/ 약이 독했는지 소변볼 때마다 별만 보이시더라는데요// (중략) 한때 뜨거웠던 전립선의 소유자들/ 만만했던 생의 기억 더듬는 발기부전의 안쓰러운 근엄함이여//(뜨거운 전립선 중)
강 시인은 199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따뜻한 종이컵’ 등을 출간했다. 제20회 대구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에디터 추천시
사랑에 관한 짧은 고찰(강문숙)
여자가 한 남자를 번역한다
그 남자는 여자와, 여자의 문장을 동시에 번역한다
그들의 공통점은 내 마음을 너에게 내보내고
네 몸이 내게로 오게 하는 일이다
단어가 제 궤도를 이탈해 오역할 때도 빈번하다
한 여름인데 눈이 내리고 하늘이 닫힌다. 끝이야!
소리치는 순간이 와도 번역은 아직 유효하다
그들만의 얼굴 가린 언어에 갇히다가, 때로
오역인 줄도 모르고 그 향기에 도취되기도 한다
하지만 침묵은 참을 수 없이 난해한 기호
그 빈혈의 시간을 견딜 수 없어
서로의 무게중심을 고민하는 행간이다, 위험하다
번역하는 동안만이 그들의 시간일 뿐
끝장을 내고서야 암묵적인 유효기간을 산출해내는
아이러니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랑은 번역이다
제각각 우레 속의 뇌파로 번역한 눈먼 문장이
툭, 가슴 어디쯤에서 끊어지며 반역할 때까지
서로에게 절벽 같은 꽃을 달아준다
*이 글은 대구한국일보가 발행하는 월간문화잡지 <엠플러스한국> 8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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