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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외할매와 엄마-어버이날에(심보통 1979~)


#외할매와 엄마-어버이날에(심보통 1979~)


외할매는 
평생 한을 갖고 사셨다
아들 못 낳은 한恨

엄마는
외할매의 한을 풀었다
형에 이어 내가 태어났다

외할매와 엄마는
형의 자그마한 고추를 보고선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았단다

외할매는 지극정성으로 
손주들을 돌봤다
외할매가 울 엄마인 양

아흔둘, 외할매가 
앙상한 뼈만 남기고 
한 많은 삶을 마감하셨다

엄마는 외할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외할매 묘로 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외할매 묘소를 돌봤다
누구는 남편을 일찍 여읬는 갑다며
혀를 찼다

엄마에게 봄 끝자락은
잡초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알림종이다
겁나게 자라나는 잡초는 타도의 대상이다

한여름에는 땡벌에 쏘이고 
정체 모를 벌레에 불켜도
엄마는, 그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외할매와 엄마는 지독한 사랑이다
한 무더기의 거친 무덤에 
혼魂이 있음을 엄마만 아는 걸까

현대판 시묘살이는 10년 동안 
현재진행형이다
어버이날인 오늘, 
새벽녘에 외할매를 만나고 오셨다 

엄마는
손주들 잘 키워 주신 은혜
별난 남편 잘 돌보아준 은혜
직장 간 사이 집을 잘 지켜주신 은혜
그 은혜를 천천히 돌려주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울 외할매는 딸 하나는 
정말 잘 두셨다 싶다
엄마는 올해 예순일곱이시다
다음 달이면 엄마도 할매가 된다

/2013년 4월 22일 찍고, 5월 8일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