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담 처마 아래(심보통 1979~)
옛날 집은 온전히 자기네 담이 잘 없다
1979년산産 우리집도 벽 두 면은 이웃집 창고이거나 방이다
이웃집 입장에서 봐도 사정은 매 같다.
형편에 따라 집을 허물고 담장을 새로 짓기도 하지만
시골 형편이라는 게 크게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는 거라
흙담은 흙담대로 슬레이트 지붕은 슬레이트 지붕대로
사람이 늙어가듯이 그 늙음을 그대로 보아주는 게 다반사다.
늙어감은 익숙해짐. 담벼락이 조금 흘려도 뜯겨도
슬레이트 지붕 한쪽이 동강 문드러 떨어져 흉해져도
거기에 시비를 거는 이웃은 내 일찍이 보지 못하였다.
되레 처마 아래 살림살이를 여미어 둠을 감사할 뿐,
21세기 시골집이라도 자동차가 석 대요 컴퓨터는 넉 대요
휴대전화는 다섯 대인데, 담벼락은 20세기 것이라
가만 볼 것 같으면 산다는 게 뭐 뽀대날 필요가 있는가
그저 이웃간 싸움 없고 온정 나누고 살면 그 껍데기가 무슨 소용인가.
금강경에 이르기를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라 하였으니
凡所有狀 皆示虛忘 略見諸狀非狀 卽見如來
그래, 저 보잘 것 없는 담벼락에 실하게 걸린 햇마늘이
또 한 수 가르침을 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경우심조이즉견여래境遇心造而卽見如來인가 하노라.
/2013년5월6일 찍고, 9일 짓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개시허망=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상이 있는 것이 상이 없는 것으로 보일 때, 그 때 곧 여래를 보게 되리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경우심조이즉견여래境遇心造而卽見如來인가 하노라=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인 바, 마음 짓기에 따라 여래를 볼 수 있음인가 하노라
***경우심조이즉견여래境遇心造而卽見如來= 이런 말은 본디 불경에 없다. 금강경의 한 구절인 '범소유상...'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를 재가공해 풀어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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