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고드름(심보통 1979~)
참새 다리만큼 여리디여린
포도나무 묘목은
겨우내 깡총깡총 잘려
뿌리가 아래로 눈이 위로 가게 해
땅 속으로 들어간다
겨울한철 컴컴한 그곳에서
뿌리를 내고, 싹 틔울 준비를 한다
따뜻한 봄이 오면
비로소 세상으로 나와
제 자리를 찾아 포도밭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봄을 거쳐 푸른 잎을 내고
자그마한 녹색 포도알을 맺는다
여름을 지나는 동안 굵고 붉게 익어간다
자그마한 포도묘목은 이제 의젓한 어른나무가 되어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포도를 내어준다
그렇게 18년의 생을 살아간다
사진 속 골목 한귀퉁에 재어진 포도나무는
그렇게 제 임무를 다한 것들이리라
이제 이 나무들은 어느 집의 아궁이 속에서
작렬하게 전사할 것이다
포도나무 생애는 이렇게 마감된다
지난 2월초 폭설 이후 동장군이 물러가면서
쌓였던 눈이 서서히 녹으면서 고드름이 열렸다
이 장면은 진기한 장면이다
시골에서 나서 자랐어도 이런 장면은 본 적이 없다
점심무렵 카메라에 담아 그렇지
해질녘 담았다면 매우 을씨년스럽고 괴기스러웠을 것이다
우리 동화 중에 '아낌 없이 주는 나무'란 게 있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사과나무인데
어느 나무든 나무는 우리네 인간에게
제 모든 것을 다 주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다
우리는 유치원 때부터 미물微物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데 커 가면서 거꾸로 실천한다
미물을 없신 여기고, 하찮게 여긴다
미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고등동물인 인간도 함부로 대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의 죄를 짓고 사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포도나무처럼 전부를 내어주고 생을 마감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마구잡이 식으로 사람을 잡는 일은 없어야겠다
안치환의 노래 중에 '오늘이 좋다'는 게 있다
그가 동창회에 갔다오면서 작사했다는 노래인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남은 인생 통틀어서 우리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내 친구야
남은 너의 인생에 저 하늘의 축복이 함께하길 바랄게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겠다
세상 나무들의 생을 지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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