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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호박줄기(심보통 1979~)


#호박줄기(심보통 1979~)


울 외할매 살아 계실 때

호박줄기에서 맺힌

노오란 호박꽃은 

햇볕 쬥쬥한 날에 

볼뚝 앙증맞은 애호박을

뻗어냈다


외할매는 여린 내 팔뚝만한

애호박을 단번에 뚝 꺾어

쓱쓱 씻은 뒤 

어린 손주에게 

잔치국수에 버무려 주셨다


장마져 꿀꿀한 날엔

애호박 서너 개를 따다가 총총 쓸어

하이얀 밀가루와 물과 소금을 섞어 

반죽을 내고는

미끌미끌한 식용유를 프라이팬에 휘 둘러쳐

도깨비처럼 뚝딱 호박전을 만들어주셨다


초록잡초 무성한 대문 지붕 위에서

휘영청이 흘러내린 호박줄기는

등줄기를 타고 함함하게 따 내려간 

외할매의 머리채를 닮았다.


/2013년 7월 18일 호박줄기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