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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글로벌새마을운동과‬ 한국


‪#‎글로벌새마을운동과‬ 한국
어제(22일)는 새마을의 날이었다. 1970년부터 박정희 정부에 의해 주도된 새마을운동은 80년대(박정희 사후) 학계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관 주도의 대중동원운동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관민이 합동한 대한민국 근대화운동이라는 시각도 있다. 전자의 평가는 제도권 학자들에 의해 주도 되었고, 후자의 평가는 주로 박정희 시절에 몸담았던 관료들에 의한 산물이다. 내가 보기에 전자의 평가는 새마을운동+권위주의정부, 군사독재정부란 시대 상황이 두루 섞여진 평가인 듯하고, 후자의 평가는 새마을운동 자체만 분석한 것 같다. 
199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에 관한 연구는 숙졌다. 80년대 봇물처럼 터져나왔던 논문들도 두 시각에서 더 진전이 없었고, 전두환 정권 시절 새마을운동 중앙본부가 관변단체에서 민간단체로 변모했고, 그 수장에 전경환(전두환 동생)이 앉으면서 비자금창구로 전락했던 등의 사정이 영향을 끼쳤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2000년대 들어 새마을운동에 관한 최고의 역작은 <그들만의 새마을운동>이다. 분석틀을 80년대마냥 박정희 정부 주도의 새마을운동(1970~79년)에서 각지에서 그들 나름의 '새마을' 운동을 주도해온 민간을 분석함으로써 박정희 정부의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어도, 우리 국민은 조금씩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는 측면을 보여준 것이다. 이 책은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도 전면 부정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나는 2016년 현재, 새마을운동을 이야기하려면 세 가지 측면을 염두에 둬야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첫 번째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논의에 함몰된 나머지 그 의미를 진지하게 숙고해 보지 않았던 '새마을운동발상지'를 제대로 알아보는 일이다. 기실 2000년대 들어 중국, 동남아, 제3세계 저개발국가에선 농촌개발모델로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고 경상북도 최남단 청도 땅을 찾아오고 있다. 이건 팩트다. 청도 신도마을은 새마을운동발상지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은 신도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단행했던 마을 단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일찍이 주목된 바 없다. 박정희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서 작성한 문건 중엔 신도마을 사례를 인근 마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확대 전략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사례가 있다. 박정희 정부도 전략적으로 활용한 신도마을은 어떤 마을인가. 만약 내가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고 내방하는 저개발 국가의 고위공무원 혹은 국민이라면 '태초의 새마을운동 주민들'의 이모저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건 두 번째 이야기는 충분히 검증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우리에게 익숙한 두 논리(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이야기다. 대단한 운동 vs 별 것 아닌 운동. 나는 새마운동을 별 것 아닌 운동으로 치부해 버리는 시각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운동에 참여했던 그 많던 민중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그 숱한 애환을 박정희 정부가 주도했다는 이유로 단칼에 '가치 없는 것'이라고 쳐버릴 수 있는 것인가. 자그마치 10년이고, 그 기간 동안 대한민국 풍경이 개벽하듯이 달라졌다는 사실마저 부정한다면, 그건 대한민국 민중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와 그 시절 새마을운동에 참여했던 우리 조부모, 부모세대들은 어쨌거나 한 몸뚱어리였다. 동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이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 덕에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곡괭이 삽자루 호미를 들고 온몸으로 길을 넓히고, 다리를 놓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새마을운동을 부정하는 것은 대단한 지사적 행동이 아니라 우리 민중사를 부정하는 옹졸한 행동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글로벌새마을운동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 농촌 사정과 비슷하거나 더 열악한 나라들은 대한민국의 새마을운동을 통해서라도 잘 살게 되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 주는 나라로 지위가 바뀐 대한민국의 응당한 의무다. 관정을 뚫고, 샘을 파고, 논을 정비해서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이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입장에서는 우습고, 호사스러운 일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무지한 거다. 저개발국가에 최소한 생존조건인, 물을 자유롭게 쓸 환경만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하느님은 해외에 파견된 대한민국 봉사자들이 된다. 글로벌새마을운동은 현지에서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점점 나아지고 정밀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지형이 반듯하게 달라지는 새마을운동의 시대는 끝난지 오래다. 그러나 누군가에는 그 의미가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 기왕 새마을운동을 배우겠다는 전 세계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이라면, 늦은감이 있지만 새마을운동발상지를 체계화하고, 방대하게 축척된 1970년대 새마을운동 자료를 그들을 위해 요긴하게 쓰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참고로 나는 새마을운동발상지가 꼭 경북 청도 신도마을 한 곳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조부모, 부모들은 전국 도처에서 주어진 시대정신을 묵묵히 구현하려 애써 왔다. 그들은 당장에 먹고 사는 걸 걱정하며 근근이 버텼겠지만, 자식들에게 나은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은 비수처럼 품고 살았을 것이다. 그 답은 각자의 부모에게 물어보아도 능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있기 전에 신도마을 같은 '그들만의 새마을운동'이 있었고, 정부가 나서 그들을 팍팍 밀어준 것이 새마을운동이었다. 근 반세기가 흘러 '그거 우리도 좀 알려달라'고 가난한 국가의 국민들이 대한민국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우리 국민이 온몸으로 써온 근대화 체험사다. 새마을운동은 대한민국이 아니면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심보통 2016.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