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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사회학.com/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희망칼럼3] 청춘아! 멋대로 죽지마라

안녕! 여산 형이야. 세 번째 편지다.

#. 오늘은 역사 이야기로 글머리를 시작할까 한다. 아니, 역사 그러면 거부감이 일수도 있으니 만만한 SBS 사극 '뿌리 깊은 나무' 이야기를 좀 하자. 형은 한석규를 무지 좋아한다. '서울의 달'때부터 완전 팬이었다. 그가 나온 영화, 드라마는 죄다 챙겨봤다. 그 한석규가 열연 중인 세종이 통치한 조선 전기는 그나마 사회적으로 신분제도가 안정적이었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엄히 지켜졌단 말이다. 하나 
조선 중기 들어 중.일 등과 상거래가 빈번해지면서 거상이 탄생했다. 얼마나 바지런을 떠느냐에 따라 부자의 탄생은 따논 당상인 세상이 왔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 됐지. 민초가 돈 맛을 보고서 깨달은 건 "세상 돈이면 안 되는 거 없다!"였다. 신분도 갈아탈 수 있고, 집과 옷과 먹거리도 마음껏, 양껏 구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바로 돈이었다. 호색한은 계집도 마음대로 거느리며 욕정을 달랠 수도 있었다.
 
#. 급기야 조선 후기 들어선 돈 있는 자가 가난한 양반을 지나가는 개보듯 하는 게 또다른 풍속이 됐다. 태생적 신분이 아니라 부富가 말 그대로 '끗발'이고, 새 신분 질서를 만들어내는 수단이 됐다. 반상班常의 구분은 사실 무의미해졌다. 공노비를 폐지하자는 건 오늘날로 말하자면 월가를 점령해 "금융가들을 향해 천박한 탐욕을 거두라"고 성토하는 여론과 비슷했다. 1801년 조선 조정은 공노비 완전 폐지를 선언한다. 순조 2년 때였다. 하나 공노비는 일거에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형이 그 유추의 근거로 삼는 것은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이야기다. 다만 100년이 흐른 뒤의 얘기고, 가노家奴의 사례라 단정할 순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 경남 의령 정곡면 중교리 호암 생가. 2010년 3월, 유례없는 폭설이 내렸다. 그날 형이 몸담았던 신문사 사장을 모시고 이곳을 찾았다. 이른바 '리치 로드' 스토리텔링을 위해 현장실사 차원에서였다. 기대를 별로 안 해서 였을까, 기대 이상이었다. 형은 이후에 호암 생가를 공사적으로 20여차례를 다녀왔다. 
 

#. 호암의 집안은 대대로 만석지기였다. 그의 집엔 종이 여럿이었다. 이병철의 집은 경남 의령 정곡면 중교리에 호젓하게 자리했다. 지금도 보존이 양호하다. 그의 탄신 100주년을 맞은 2007년 일반인들에게 개방한 이래, 지금까지 200만명이 다녀갈만큼 의령의 명소가 됐다. 왜냐. 그곳에 가면 거부巨富의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별 사람 다 볼 수 있다. 부자 되고 싶은 마음은 동서와 고금과 시공을 초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호암 생가에 가보면 절로 하게 될 거다. 한번 가 봐라. 기분이 좋다. 기운이 좋은 집이니 그럴밖에.
 
#. 각설하고 일찌기 신문학을 배운 이병철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노비의 해방'이었다. 1930년대초였다. 그때까지 이병철의 집에선 종을 부렸다는 얘기다. 사회적으로는 공식적으로 공노비와 사노비가 사라졌을 시점인데도, 시골 한적한 마을에선 조선초기 신분제도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병철 눈에는 하늘 아래 천하고 귀한 사람이 없어 보였는지 모른다. 좀 구라를 보태면 호암이 삼성을 이끄는 경영철학 중 첫째를 '인재경영'으로 삼은 것은 그의 머릿속엔 하늘 아래 잘난 놈도, 못난 놈도 없다는 것을 일찍 간파한 때문일 게다. 그는 오늘날 '신입공채' '경력공채' 할 때 공개채용 제도를 도입한 장본인이요, 자기 사람을 추리고, 뽑는데는 꼬박 30년간을 2차 전형까지 직접 맡아했다. 그룹의 총수가 되고서도 말이다.

 #. 이병철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숱한 신화를 남기고 사라졌다. 이제 세인들은 알아서 호암을 입에 담는다. 호암을 활용한 콘텐츠로 돈을 벌려고도 한다. 호암은 공히 대한민국 거부의 아이콘이다. 조선의 신분제는 돈이 대빵되는 시대를 맞으며 서서히 무너졌다. 오늘날 반상을 논하면, "저거 똘아이 아니냐" 싶을 거다. 요즘 돈 때문에 웃고 우는 사람이 많다. 또 돈 때문에 귀한 목숨을 맞바꾸거나, 주검을 자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나 옛날이라고 상황이 달랐겠냐. 인터넷 같은 초고속 매체가 없었기에 모르고 살아간 세월일 뿐이다. 엊그제 4명이 "힘들어 못 살겠다"고 동반자살했다. 얘들아, 너네 정말 나쁘다. 부모는 뭐고 ,형제는 뭐냐. 부모때문에, 형제때문에 싸늘한 주검이 된다는 건 순전히 너네 편하자고 하는 얘기다. 아주 못된 이기주의의 발로다.

@ 호암은 '부국강병'이란 칼을 가슴에 품었다. 그의 나이 19세 때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현대사를 어기차게 관통했다. 그뿐 아니라 그와 동시대를 산 이들의 가슴속엔 '애국'이란 어여쁜 꽃한송이가 저마다 피어났다. 그게 아니라면 말년에 암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반도체 산업을 일구겠다는 집념으로 일관한 그의 자세를 끝없는 입신양명을 위해, 자신의 업을 위해라고 깡총 잘라 말한다면 이해가 턱없이 부족하다.  반도체는 또 다른 신화를 쓴 호암의 막내 이건희가 이뤄냈다. 아비의 한을 아들이 기어이 풀어준 것이다. 아비와 자식은 닮는다. 피는 못 속인다.
 

#. 죽지 말고 부디 죽을 힘으로 이 세상을 어기차게 살아가라. 포기하면 지는 거고, 부러우면 지는 거다, 아파도 지는 거다. 지면 결국 죽는 거다. 거부인 호암도 끝끝내 암으로 사망했다. 그에게는 필생의 마지막 할 일이 남았다. 반도체 사업이었다. 죽는 게 한이 되는 것으로 치면 아마 이병철만큼 한을 많이 안고 죽은 이도 없을 거다. 너네는 세상을 왜 사냐. 네 입 하나 호구하고, 결혼하면 네 가족 호구하려고 살아가냐. 그게 인생 목표가 돼선 결단코 안 된다. 대한민국이 죽겠다고 아우성인 자들로 판치는 건 살아가는 이유가 기껏 제 입에 풀칠하고, 폼나는 집에, 폼나는 차에, 그럴싸한 곳에서 폼잡고 배불리 먹기 위해서다. 그걸 위해 남과 비교하고 남을 짓밟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아! 호사유피虎死留皮라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단 말이다. 한문시간에 졸았냐. 

#. 커닝, 커닝 하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누구? 그러면 여지 없이 링컨이라고 답하는 무지몽매한 너희, 잘 들어라. 너희가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를 알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건 죽어봐야 한다. 죽기 전까지 이 꽉 깨물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그러고도 죽을 때, "아! 헛살았구나"하는 이도 많다. 이제 생각을 바꿔라. "국가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지 바라지 말고, 네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 그래야 네가 죽을 때야 비로소 태어난 이유를 알게 될 거다. 그걸 모르고 가면, 정말 세상 허투루 산거다. 부디 케네디의 말을 잘 새겨라. 함부로 귀한 목숨 버리지 마라. 그렇게 가면 영혼이 구천을 떠돈다. 남들 편히 하늘나라 갈 때, 니들은 구천에서 방황하는 진짜 불쌍한 영혼이 된다. 죽겠다 작심했다면, 그 작심을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를 알아가는데 써라. 그러면 이병철도 부럽지 않은 삶 산다. 형이 보장하마!  

#. 세종이 나약해빠진 니네 모습을 보고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연병할, 우라질 놈들!" 세종이라고 왜 욕을 안 했겠냐. 그도 군주이기 전에 인간인데, 신하라는 것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그렇게 잡아 흔드는데, 나라도 썅욕을 날렸겠다. 이런 "씨손!"하고. 

추신: 
1. [20대에 고함]은 20대 청춘들에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안내해 주려 미약한 힘을 기울이는 장입니다.
2. 이 곳에선 댓글을 금합니다. 남기실 말씀은 '여산에게 말걸기'로...

2011년 11월 19일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여산 형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