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이력기
나는 영특하지 못하다. 그래서 남들보다 몇 배를 노력해야 겨우 조악한 결과를 낼 수 있을 뿐이다.
난 글쟁이다. 소설가 아버지를 둔 덕분으로 그런 쪽 유전자가 내려온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중고교 시절 단 한 번도 글을 써서 상을 받아본 일이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는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선생들이 내 글을 바로 봐 줄 안목이 부족했던 거다.
@필자가 대학시절 발간하거나 참여한 각종 인쇄물들
내가 글로 첫 성과를 올린 것은 대학 때 교지문학상을 받을 때였다.
IMF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거릴 때, 나는 아버지들의 입장을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다. 그걸 글로 썼다. 밤새워 하룻밤에 썼다.
당시 교지 편집장은 내 작품(?)을 뽑을까 말까 무척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표절이 아닐까 의심했다고 했다.
'이 글을 정말 새내기가 썼을까?'
읽으면서 놀라웠고, 읽고 나선 고민에 빠졌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일단 '우리 학우'를 믿어보기로 하고, 당선 결과를 내게 전화로 알려왔다.
@필자의 첫 번째 스토리텔링집 <박정희 이병철 스토리텔링-사람이야기>
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수상하러 가서 편집장을 만나 들은 이야기다.
나의 첫 소설 <시대유감>은 1만 3천 학우에게 뿌려졌다.
몇 명이나 읽었을까는 여전히 난센스로 남아 있지만,
요즘 들어 생각해 보건대, 나는 어쩌면 아버지의 피를 너무 진하게 받은 게 아닌가 한다.
초중고 때 내 글은 매우 조숙했다. 아버지의 언어(아버지의 평소 말투와 아버지의 행동양식)를 내 글에 반영했으니 선생들이 그걸 이해나 했겠나 싶은 거다.
그렇다면 내 첫 소설 <시대유감>은 탁월했는가.
@ 필자가 쓴 스토리텔링 실전이론서 <스토리가 돈이다>
ㅎㅎㅎ.
지금 보면 완전 개판이고, 소설의 구성도 갖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막내의 의외의 발군에 놀라 원고를 가져와 보라고 한 뒤, "이걸 글이라고 썼냐"며 야멸찬 붉은 줄로 문장마다, 표현마다 바로잡아 주었다.(그 교정 원고를 나는 무책임하게도 잃어버렸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결국 편집장의 수준이 낮았다는 말밖에 안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편집장의 안목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은 당시 1만 3천 학우들의 시각과 표현 능력이 내 개판 글에도 못 미쳤다는 말이 된다.
나는 그 사실이 더 슬프다고 생각했었다.
아무튼 나는 교지문학상을 시작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필자의 두 번째 스토리텔링집 <세상을 바꾼 43일-새마을운동발상지 신도마을이야기>
아버지에게 상의도 드린 바 없이, 그냥 습작을 했다.
군입대 전에 쓴 글을 모아 문집을 냈다. 제목은 <까발리기>. 어처구니없는 대학군상을 모아 쓴 글이다. 100부를 인쇄해 3,000원에 팔아서 15만원이 생겼다. 그걸 훗날 내 첫 직장이 될 영남일보에 기부했다.
그리고 군에 입대했다. 1999년 4월 6일이었다.
군대에선 운 좋게 행정병(인사과 근무)이 됐고, 업무를 보는 중에 국방일보에 시와 수필을 기고해서 여러 번 실리게 됐다.
군대 말년에 사단 정훈장교는 "22사단 창설이래 국방일보 최다 기고자"라고 했다. 국방일보 장병문예에 밥 먹듯이 글이 실려 국방일보 시계를 6개씩 갖고 있는 경우는 정말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복학 후에는 학보사가 주관하는 샛별문화상을 탔다. 제목은 <시대상>.
@필자의 네 번째 스토리텔링집 <변경의 동학 상주동학이야기>
돌이켜보면 나는 시골서 자랄 때부터 세상에 관심이 많았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독특한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20대 신문기자의 꿈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소설가의 길을 가진 않는다.
내가 아버지처럼 등단작가가 될 일은 없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스토리텔링 작가>. 나는 누가 뭐래도 그 1호다.
나는 글 선생은 없어도, 스토리텔링의 스승은 분명 한 분 계신다. 아버지다.
내 지적작업은 스승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기도 하다.
엊그제 내 가치를 알아주는 회사 임원을 만나 또다른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내 글쓰기 이력이 뻐끔뻐끔 생각난 이유다.
/2015.9.5 심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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