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갑과 여사장
1.
나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1997.7~2002.6)을 근거리에서 지켜볼 기회가 없었다. 지켜봤다고 해서 잘 안다는 보장도 없지만,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조금이라도 파악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해서 조심스럽지만, 그는 내 눈에 흥미로운 인사로 보인다. 정치를 내려놓지 못하는 노객으로 보이기도 하고, 남들이 뭐라든 지역사회를 위해 마지막 사명을 다하려는 노련한 정객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근자에 그를 두 번 맞닥뜨렸다. 한 번은 회사가 급히 주선한 자리에 끼게 되었고, 다른 한 번은 어제 국채보상운동 포럼에 참석해서다. 전자 때는 마주앉아 두 시간을 이야기했고, 후자에선 멀찍이 떨어져 그의 축사를 들었다. 앞서는 강의형식으로 2시간을 들었고, 뒤에는 20분간 짧지 않은 축사를 들었다.
재미있게도 2시간의 이야기나, 20분간의 축사나 내용은 똑같았다. (했던 말 또하는)전형적인 노인의 언술인가, (시대를 걱정하는 전직 고위관료의)의도된 스피치인가. 축사를 듣고 있자니 절로 궁금해졌다.
그는 우리사회를 무척 걱정한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또 한 번 절망과 마주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올곧은 지도자가 부재한 사회, 질서와 원칙이 무너진 사회,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 공부를 안 하는 사회- 이대로라면 심각한 위기는 뻔하다는 것이다. 대안도 있다. 바로 우리의 미풍양속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인가. 안타까움의 부르짖음인가.
2.
어젯밤 비운의 전직관료와 수성구 모처에서 소주를 마셨다. 그가 안내한 식당에는 재미난 여사장이 있었다. 손님이 뜸해지자, 여사장도 동석했다.
여사장은 주법부터 남달랐다. 소주 반 물 반으로 꿀꺽꿀꺽 마셔댔다. 순간 두 남자의 소주잔이 초라해보였다. 그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말 속에 돈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자신이 돈 좀 벌었다는 얘기가 적지 않게 강조됐다. 그에게 자신감의 원천은 돈으로 보였다.
그에게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그 식당을 찾는 대구의 알만한 손님들을 자기와 동일시했다. 누구를 아주 잘 알고, 누구와 아주 친하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우쭐댔다. 듣자 듣자하니 자기 지역구의 차기 국회의원도 갈아치울 판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자식들이었다. 대단한 자식들을 두었다고 했지만, '딱 그렇게만 알라'면서 정작 자식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3시간을 함께하면서 신통방통하게 느낀 그를 찬찬히 살펴보게 됐다. 피부는 새하얬고, 눈이 깊었다. 눈썹은 반영구 문신을 했다. 얼굴은 또래 여자에 비해 아주 조금 큰 편이었다. 유독 오른쪽 팔뚝에 검버섯이 많이 폈다. 손바닥은 크고 손가락은 통통하니 짧았다. 나는 그가 박복한 상을 가졌다고 느꼈다.
자리를 파하고 들으니 젊은 시절엔 한 미모해 껄떡대는 놈들이 많았단다. 무슨 일인지 남편하고는 진작에 갈라섰단다.
3.
문 시장과 여사장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의 관점이 사방으로 통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안다는 것이다. 또 문 시장이 여사장 보다 잘 모른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여사장이 문 시장 보다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있다. 초고도로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미풍양속을 되살려 옛 인간다움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구성체 원리 혹은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못돼서다.
현대사회는 집단이나 개인이나 각자가 운영주체다. 교육 운운해 봐야 여사장은 바뀌지 않고 바뀔 이유가 없다. 과거보다 현재가 무질서해 보이는 건 과거가 현재보다 덜 분화된 단조로운 사회여서이지 인간의 질이 더 나았기 때문이 아니다.
현대는 현대의 구동원리대로만 굴러간다. 설령 문 시장의 예견대로 큰 위기에 직면한다 하더라도 그건 운명이다. 역사가 그걸 말해주고 있다. 인류는 그렇게 흘러왔다. 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통감하는 방식으로.
/심보통 2015.7.21
*이 글을 읽고 내일모레 여든인 어른께 아전인수격으로 이간질하는 인사가 있는 모양인데, 인생 그렇게 살지들 마시오. 내가 이 글로 문희갑 전 시장한테 수모를 당했는데, 이게 욕을 볼 사안이 아니에요. 나는 작가고 기자요. 작가고 기자가 아니라 누군들 이런 표현의 자유도 없다면 이 나라는 민주사회라 할 수 없소.
/2015.9.24/ 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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