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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사회학.com/미디어 프리즘

[미디어窓] 보도報道사진 도용사건

오늘자(19일) 영남일보(http://www.yeongnam.com/ ) 1면엔 대단히 이례적인 기사<사진 참조>가 실렸다. "복지부 공모전 최우수상 사진 '영남일보 보도 사진' 훔쳤다" 제하 기사다.

@ 영남일보 19일자 1면에 실린 보도사진 도용 관련 기사.

이 기사가 나온 배경은 이렇다.
영남일보 기자 출신으로 서울서 스토리텔링전문가로 활동 중인 필자가 지난 14일 인사동서 지인과 점심을 한다. 식사 후, 소화도 시킬 겸 쌈지 건물 안으로 윈도우 쇼핑을 갔다. 4층에 다다르자, 눈에 익은 사진이 필자의 눈길을 잡았다.

대문짝만한 사진 아래, '최우수상' '김필규' 같은 낯선 글씨가 도드라져 보였다. 이상하다 싶었다. 그 사진은 필자가 편집기자로 있을 때, 영남일보 마라톤대회 특집화보면에 실렸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필자가 화보면 담당 편집자여서 긴가민가 하면서도 심정적으론 '
도용盜用'쪽에 무게를 두었다.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고, 기억을 더듬어 그 사진을 찍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영남일보 사진부 선배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곤, 페이스북을 확인해 보시라 전화를 넣었다.

곧 선배가 전화가 왔다.
"맞다. 이거 내가 찍은 건데."

@ 인사동 쌈지 건물 내 전시 중인 사진. 김슬규씨는 이 사진을 무단 사용해 복지부 주최 공모전에서 최고상인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자신에게 가식 없는 정직한 땀의 승부가 인생이다"란 제목으로 출품했다. 가식, 정직, 승부, 인생 같은 단어를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2009년 5월 사진으로 생각했는데, 외출에서 돌아와 검색해 보니 2008년 5월, 영남일보 제1회 전국하프마라톤대회 사진이었다. 선배가 어떤 입장을 표할까 궁금했다.

인터넷 검색을 거친 선배는 조선일보부터 다수의 언론이 대문짝만하게 보도를 한 사실을 내게 전하며, 이건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상황에서 게재된 기사를 살펴보니, 문제의 사진은 보건복지부 주최 공모전이었고, 선배의 사진이 무단 도용돼 이 공모전에서 최고상인 최우수상을 받은 거였다.

그런데 필자는 김슬규씨가 놀라웠다. 어떻게 언론 보도 사진을 도용할 수 있을까. 김씨 나이는 쉰넷. 언론의 행태를 좀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진 도용을 통한 공모전 전문꾼인가. 어쨌든 대단한 사람이거나 순진무구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15일 보건복지부는 신문사의 항의에 확인한 뒤, 선배에게 사과와 함께 '선정 무효' 조치를 취했다. 문제는 김씨가 이 선배에게 사과하는 과정이 좋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말 한마디만 족할 일에 장황한 변명만 늘어놓자, 순하디순한 이 선배가 폭발했다.

결국 보도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그리고 오늘자 신문에 게재됐다.

@ 영남일보 2011년 12월 19일자 1면. 필자가 1면 편집자라면 -내년엔 '작은 오피스텔'이 대세- 기사를 왼편 '기업들...' 기사와 '복지부 공모전...' 기사와 배치를 바꾸겠다. 그리고 오른편에 '복지부 공모전...' 기사를 사이드톱으로 올리고, 사진기사는 가운데, '기업들...' 기사 맨 아래 배치하겠다. 최신성과 사안의 중요성 둘 모두에서 '복지부 공모전...' 기사가 사이트톱으로 가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톱뉴스로 올리면 독자와의 교감에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자칫 자사 기사 홍보용이란 원색적 비난을 비켜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사문서 도용이다. 명백한 범죄다.
만약 사진기자들의 취열한 현장을 김씨가 한 번이라도 봤다면, 김씨는 음흉한 마음을 갖지 못했을 거다. 김씨가 사진기자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알았다면, 변명은 언감생심이었을 거다.

참아 법적 대응은커녕 보도도 생각 안 한 '천사표' 선배가 김씨에게 괘씸죄를 걸고 강경 대응하겠다는 칼을 품은 건, 애오라지 김씨의 비겁함 때문이다.

그런데,
적이 아쉽다. 오늘자 영남일보 보도는 매우 한심한 수준이다. 해당 기자는 아직 펜이 설익어 그렇다 치자, 지금 영남일보 경찰팀장은 전직 사진기자였다. 그런 그가 사진기자의 자존심과 저작권 무단사용 등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하찮게 취급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물론 격주휴무 시스템에서 경찰팀장이 휴일이라 데스킹을 직접 안 봤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3년차 기자의 기사작법이나 사진설명은 매우 실망스럽다. 이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수동적으로 기사를 쓴 것 같다.

@ 취재기자나 데스크가 이 기사를 챙겨 봤거나, 설령 챙겨 봤지 않더라도 저작권 훼손의 심각성을 인지했더라면 오늘자 기사방식으로 기사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10월 동아일보가 단독보도한 '삼성전자, 대학원생에 졌다' 제하 기사<사진 참조>를 보자.
이 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한 대학원생에 
자사 김치냉장고 디자인을 의뢰해 받아 상품에 사용하면서 해외 유명디자인의 작품이라고 홍보했다가, 이를 문제 삼은 대학원생이 법정소송을 불사했고, 법원은 대학원생에 3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저작권, 특히 예술품에 대한 저작권의 가치와 권리는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종내에는 '법보다 앞서는 게 주먹'이란 이상한 논리가 사회 저변까지 뿌리내리게 된다. 주먹 센 놈이 세상을 지배하는 무법천지가 된다는 말이다. 

이번 영남일보 사진 도용사건은 적어도 3보까지는 밀고 갈 수 있었다.
1보는 팩트 보도, 2보는 보건복지부 정정 보도 내용, 3보는 이 건을 정정 보도한 여타 언론과 한국사진기자협회보와 미디어 오늘 같은 언론전문 보도지의 반응을 살펴 최종 보도하는 것이다.

@ 영남일보 보도사진 도용 사건의 최초보도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뤄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사통팔달四通八達 시대를 맞은 요즘은 종이신문의 속보 게임은 백전백패인 세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SNS의 발달로 종이신문 기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니, 아무리 좋은 건을 물어다 줘도 기사를 죽인다. 기자의 능력은 그래서 중요하다. 친정이지만 이번 보도 내용은 매우 한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