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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사회학.com/미디어 프리즘

[미디어窓] 종편, 광대 시대 서막인가

말 많고 탈 많던 종합편성채널 네 곳이 계획대로 12월 1일 일제 개국했다. 떠들썩한 종편쇼에 묻혀버린 연합뉴스의 방송전문채널 NewsY도 전파를 탔다. 이로써 신문이 방송을 겸업하는 신세계가 열렸다. 언론계 새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2주전 필자는 KBS 김성민 PD(
해피투게더 조연출)와 점심을 하면서 종편 개국을 두고 재미삼아 내기를 했다. 필자는 계획대로 개국을 못할 것이라고 했고, 김 PD는 죽이 됐든 밥이 됐든 개국하고 볼 것이라고 했다. 김 PD 예상이 맞았다. 

향방向方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김 PD는 "jTBC 말고는 쉽지 않다는 게 방송가의 일반적 시각"이라면서 "3~5년 내로 주인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PD는 그 이유로 종편 3사社의 취약한 자본금을 들었다.

하지만 필자는 조선일보가 대주주로 참여한 TV조선은 얕잡아 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공히 대한민국 1등 매체가 대주주로 참여한 TV조선. 사실 TV조선은 그간 jTBC(중앙일보 대주주 참여사), 채널A(동아일보 대주주 참여사)에 비해 준비과정이 상대적으로 적게 노출됐다. 

@ jTBC가 종편 개국 당일 자사 홍보를 위해 선보인 '방송사 자본금' 그래프. 
jTBC는 이 자금력을 근거로 자사가 공히 가장 안정적이고 알찬 콘텐트를 보유한 회사임을 강조했다.
 

두 가지 시각이 나왔다. 우선 "역시 조선일보"라는 호好 시각. 이 시각의 이면엔 '1등 신문답게 보안이 철저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제일 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심리가 상당했다. 반면, "과거 방송사 운영 경험이 있는 중앙과 동아에 비해 노하우가 전무하다"는 악惡 시각도 적지 않았다.

종편 개국 전 가장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곳은 
jTBC. 유명 PD를 영입하고, 걸출한 스타들도 개국공신 반열에 올리는데 적극적이었다. 채널A는 그 중간자적 위치에서 어중간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매일경제의 MBN은 뉴스전문채널에서 종편으로 갈아 탄 경우. 종편 개국 후 MBN 운영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드디어 12월 1일.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조선일보는 개국부터 방송사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포털엔 'TV조선의 굴욕'이란 기사가 떴다. 속뜻은 '
조선일보의 굴욕'이란 시각이 팽배한 듯했다. 음성이 안 나오는가 하면, 화면이 상하 두 개로 나뉘고, 10분가량 검정바탕으로 지속되기도 했다. 준비 안 된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기대는 큰 실망으로 이어졌다. 

jTBC는 홍석현 회장의 등장이 눈에 도드라진다. 1980년 군부시절 KBS로 통폐합된 TBC가 31년만에 부활한 것. 선친 홍진기 회장의 과업을 다시금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벅참이 그에게는 있었는지 모르겠다. 홍 회장은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주요 장면에선 어김없이 '주인' 노릇을 톡톡히 했다.

채널A는 김재호 동아그룹 회장이 직접 개국선언을 알렸다. 메이저 3사 사주 중 최연소인 그의 개국선언 모습은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백발과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 고이 간직한 노객들이 좌우에 포진해 있어 그 모습은 더더욱 어색했다.

jTBC와 채널A는 옛 이야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가족으로 치면 족보와 내력을 알아야 비로소 올바른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듯.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옛 이야기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였을지는 의문이다. 너무 옛날 이야기인데다, 그 이야기엔 감흥이 별로 없었다. 역사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 '자뻑'이요, '깔때기' 방송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편 개국한 날, 한겨레와 경향은 1면 광고를 비워버렸다. 한겨레를 비롯한 경향, 국민, 문화 등은 2~3면을 할애해 종편에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한겨레는 '조중동 동시 개국...여론 민주주의 질식 위기' 제하 기사를 머리기사로 실었다. 
 

이런 종편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대한민국에 편파, 왜곡 보도가 더 심해질 뿐, 국민에게는 하등의 덕될 것이 없다는 시각이 하나다. 결국엔 조중동만 배불려 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조중동과 반대쪽에 있는 경향과 한겨레는 1일자 1면 광고를 비워버렸다. 그밖에 마이너 신문들은 2~3면을 할애해 종편을 개악 방송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진보단체들은 앞 다투어 거리시위를 선동했다.

함구하거나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이는 쪽은 지켜보자는 쪽이거나, 종편이 덕이 될 것이라고 보는 쪽이다. 볼거리가 다채로워졌다. 지상파 3사의 틀에서 벗어나 종편 4개사도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종편들은 앞 다투어 기존 방송 형식을 과감히 깨뜨리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채널A830이 톱뉴스로 선보인 '강호동 과거 일본 폭력조직 야쿠자 모임 참석'을 다룬 두 꼭지가 그런 경우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저런 3류 뉴스를 메인에 올릴까 싶었다. 적잖이 놀랐다. 양질의 콘텐츠, 격조 높은 뉴스를 구구하던 동아가 정신이 나갔나 싶을 정도였다.

이와는 별도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종편 개국을 사흘 앞두고 지상파 3사의 고화질(HD) 송출이 중단됐다. 케이블 방송사들이 무단 중단한 것인데, 법원의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는 게 그쪽의 설명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지상파 3사가 케이블방송을 상대로 프로그램 재전송 사용료를 지급하라며 법원에 낸 소송에서 법원이 지상파 손을 들어주면서 빚어진 사태다. 이블 방송사의 고화질(HD) 송출은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지상파 3사의 고화질(HD) 송출 중단'이 종편 입장에선 박수칠 일이다. 묘한 시점에 이뤄져 혹 이면에 정치적 장난이 개입하지 않았나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다.

이제 종편 닻은 올려졌다.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됐다. 그 바람에 케이블호號도 바짝 긴장했다. '양질의 콘텐츠'란 노를 부단히 젓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제 어느 배에 타고 유람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 종편 개국으로 가장 쾌재를 부른 건, 개그맨들이 아닌가 싶다. jTBC 버리아이티쇼 상류사회는 김병만, 김수근이 진행을 맡았다. 개그맨이 집단으로 등장하는 개그프로도 종편 4사의 전매특허처럼 생겨났다.

하나 경박한 콘텐츠로 한국 방송시장이 퇴폐화되지 않을까 저어되는 것도 사실이다. 희극인만 살맛나는 세상을 맞이한 건 아닌지 모르겠단 생각, 퍽 든다. 특히 밥 굶기로 유명한 개그맨의 설 자리가 눈에 띠게 늘었다. 개그 프로가 전매특허처럼 종편 4사에 생겨났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A급 배우들을 영입했다. 고품격 드라마를 선보일 예정이다.

반면 뉴스의 전달력은 떨어진다. 아나운서가 자신이 마치 연예인인 양 방방 뜬다. 고유의 지성이 없는 것인지, 애써 시청자 수준(?)에 맞추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종편은 광대 시대를 알리는 서막인가. 그 광대는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줄 것인가, 시청자의 가슴에 패악질을 해댈 것인가. 메이저 신문사가 대주주로 참여한 종편의 방송활용력을 지켜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