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엄마에게(심보통 1979~)
엄마는 어젯밤
손을 펴들고 말했지.
손가락이 어째 이리도 굵겠냐고.
몰랐었어.
엄마손이
할매손과 꼭 빼닮았다는 걸 말야.
정말 많이 닮았더라고.
할매손은 정말 컸지.
손가락은 통통하다 못해 뚱뚱했고.
손바닥은 평생 흙을 만져 거칠었지.
등이 가려울 때
할매손이 슥슥 몇 번만 훓어주면
금세 상큼하게 시원했지.
언제고
울 할매손은 왜 이리 크고 뚱뚱하고 거칠까-
생각해 본 일이 있어.
할매를 주제로 글을 쓸 때
나는 제일 먼저 할매손이 떠올랐거든.
잘 모르겠더라고.
어제 또 한 번 생각해 보았어.
이번엔 알겠더라고.
할매가 부엌 이선으로 물러나고
엄마가 부엌 일선으로 나서면서
지난 15년간
밥하고, 반찬하고, 설겆이 하고
빨래 빨고, 걸레 빨고, 옷가지 빨면서
엄마손은 서서히 조금씩 알 듯 모를 듯
할매손처럼 되어갔던 거야.
엄마가 손을 펼쳐던 날,
나는 내 손을 보면서 생각했지.
나는 아직 한참을 더 살아야겠구나.
그래야 엄마 마음 새끼발톱만큼은 이해하겠구나.
간밤 꿈 속에서
검정숄더백을 메고 빼딱구두 신은 커리우먼이
아주 조그맣고 귀여운 손으로 가방끈을 잡은 채
우리집 골목 안으로 또각또각 걸어오고 있었어.
/심보통201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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