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동북아역사재단 분들과 저녁을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멀게는 고조선부터 가깝게는 독도까지 말 그대로 동북아 역사를 다루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관이다. 90명 남짓한 석박사 연구원이 우리 역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사람은 운영관리실장과 독도 전문가 1명이었다.
@ 대표적인 양반촌 안동 하회마을에는 양반촌과 서민촌이 따로 형성돼 있다. 엄연히 신분질서에 따라 사는 곳도 달리 했다. 뱃사공은 서민을 태워 강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가교 역할을 했지만, 한량인 양반의 노름과 놀음에 비위 맞춰 노질을 해야했다. 사진은 하회마을의 대표적 관광상품된 배타기 체험 모습.
#. 이들과 저녁을 하다, 재미있는 얘기가 나왔다.
운영관리실장이 먼저 운을 뗐다. 우리나라 노비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독특한 형태라는 것. 무슨 말인고 하니, 유사 이래 노비의 등장은 정복자와 피정복자간 종속관계로 형성되는 것이 보통인데 우리나라는 조선왕조 500년간 인간 대 인간(person to person)의 귀천을 따져 누구는 양반이, 누구는 노비가 되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구조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헌데 무려 500년이나 유지돼 온 노예제는 6.25로 한방에 무너졌다는 거 아닙니까. 그전까지는 시골에서는 조선시대 신분질서가 유지되고 있었거든요." 실제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 이런 시각 갖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체제의 전복을 일으킬만한 획기적인 요소가 없었다는 게 그의 부연이었다.
#. 일본에서 유학하고 온 독도 전문가가 말을 이어받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본의 노예제가 사라진 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공이 크다. 도요토미가 누구인가. 우리에게는 숙적宿敵이다. 철천지원수다. 극악무도한 자로 정평나 있다. 그런 그가 기득층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더 없이 좋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데 일등공신이라니! 좀 아이러니다 싶었다. 비밀은 그의 신분에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농민 출신이다. 농민은 지주에 예속돼 농노 신분으로 살아갔다. 도요토미는 토지를 재측량해 공평하게 나눔으로써 그 체계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하여 우리나라보다 200년 앞서 미개적인 노예제는 일본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801년(순조 2년) 공노비가 철폐됐다.
#. 요즘은 웰빙시대다. 잘 먹는 만큼, 운동도 열심히 한다. 오늘 아침(23일) 뉴스엔 "남성도 이젠 옷에 자기 몸을 맞춘다"며 "몸보정 옷이 유행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떠올려보자. 시계추를 500년 전으로 돌려서. 양반과 천민 중에 활동량이 많은 건 당연 천민이었다. 특히 가노家奴의 미덕은 재바름, 바지런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 그런데 노비는 대개 수명이 짧았다. 양반은 딸깍발이 생활에도 노비보다는 오래 살았다. 노비는 몸을 혹사해서 그렇고, 양반은 그렇지 않아서 일까. 그 이유만으로 수명의 보편성을 설명할 순 없다. 비밀은 천기天氣, 심기心氣, 지기地氣의 이해와 활용에 있다. 식자층 양반들은 대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적극 활용하고 살아갔다. 사람은 신체의 세 곳을 통해 대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인다고 믿었다.
#. 첫째가 천기天氣다. 우리가 흔히 백호 혹은 가마라고 부르는 곳을 통해 하늘의 기운을 받는다. 백호는 하늘 위로 향해 있다.
둘째가 심기心氣. 먹는 음식으로 기운을 조절한다. 육류를 먹으면 포악해지고, 채식을 하면 사람이 순해진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 거다. 식단을 조절해 체질을 바꾼다는 얘기는 보편화돼 있다.
셋째가 지기地氣인데, 이것이 양반이 천민보다 장수한 비밀의 열쇠다. 사람 발바닥은 앞부분이 삼각으로 한 지점에서 만난다. 족금이 그 지점을 친히 알려준다. 그곳이 천혈天穴(혹은 천구혈)이란 곳이다.
#. 양반을 연상하면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다. 한복, 버선 같은 의복을 기본으로 상투, 부채, 곰방대 같은 장신구가 쉽게 그려진다. 이런 모습의 양반에선 또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다. 가부좌를 틀고 주로 천혈을 꾹꾹 눌러주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천혈, 그곳은 기운이 드나드는 곳이다. 무릇 사람은 두 발로 서 땅을 밟고 살아야한다 했다. 지기를 얻기 위함이다.
#. 요 몇년새 등산과 둘레길 인파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건 유행이어서가 아니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 했다. 기운이 통하면 아프지 않고, 기운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천기, 지기, 심기를 적절히 누리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섭리다. 우리 몸만큼 직관적인 것도 없다. 그 옛날 가노라고 삼기三氣를 몰랐을 리 없다. 하나 주인 눈치보느라 챙기지 못했을 뿐이다. 인간 대 인간의 귀천을 따져 반상을 구분한 우리 조상의 행태를 우리는 마땅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귀하고 천함이 따로 없다. 모두가 중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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