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합리성rationality을 곧잘 입에 올린다. 이성理性으로 세상을 재단裁斷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경향은 문명이 초고도화된 사회보다 초고도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보다 보편적이다. 한데 그 재단들엔 단정과 확신 같은 격정적 단어가 판친다.
FTA 국회비준과 종편개국 문제가 요즘 '뜨거운 감자'다. 중간자적 입장은 아예 없어 보인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시끌벅적하다.
필자의 페이스북에서도 요란하긴 마찬가지다. 극단의 의견이 초를 다투며 업데이트된다. 기자 출신 펫친들이라 어투와 표현강도가 더 센 듯도 하다.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보고 있자니, 짜증과 함께 갑갑증이 일었다. 시간 쪼개 기어이 칼럼을 쓰기로 했다.
필자의 페이스북에서도 요란하긴 마찬가지다. 극단의 의견이 초를 다투며 업데이트된다. 기자 출신 펫친들이라 어투와 표현강도가 더 센 듯도 하다.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보고 있자니, 짜증과 함께 갑갑증이 일었다. 시간 쪼개 기어이 칼럼을 쓰기로 했다.
@ 대한민국은 언제쯤 초고도화된 사회로 진입할까. 언제쯤 이념과 입장이 달라도 합리적 사고를 근간으로 타협과 절충하는 사회를 만들어낼까.
사회학계에선 마르크스나 베버 같은 불세출의 고전학자 이후 새천년 들어 양대 산맥이 성립됐다. 한 맥은 위르겐 하버마스고, 다른 맥은 니클라스 루만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독일 사람이다. 그러니까 21세기 사회학판은 독일이 쥐락펴락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은 하버마스나 루만이나 이미 19세기말 명망있는 학자 반열에 올랐다는 점이다.
하나 외국의 저명한 학자 이론이 우리나라에 소개되기까지, 그것을 갖고 석사 학위자가 나오까지는 족히 수십년이 걸린다는 점, 그게 대한민국 사회학계뿐만 아니라 대다수 학계의 심각한 문제다.
물론, 학문이란 게 쉽게 이수되고 섭렵되는 건 아니다. 특히 이론은 방대한 데다,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대도 우리나라는 언제까지 뒷북만치고, 변죽만 울릴 것인가를 생각하면 교수들에게 질타성 발언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각설하고,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이론(1,2권)이, 루만은 사회체계이론(1,2권)이 강력한 무기다.
사실 기자 시절 눈치봐가며 다닌 대학원이라 수업을 제대로 듣진 못했다. 수업 중에도 불쑥불쑥 빠져나오는 불충을 은사께 보인 적 한두 번 아니다. 이 자리 빌려 필자 발걸음도 천근만근이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런 중에 슬쩍슬쩍 '야마(핵심)'만 잡아가던 필자 귀에, 눈에, 가슴에 박힌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하버마스<사진 위>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어 합리성에 기반해 사고하고, 소통한다. 여기엔 어떤 문제라도 종내엔 합리적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좀은 과장이 있지만, 개개 구성원의 합리성이 대의大義를 이루고, 그것이 곧 사회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개개의 의견이 곧 사회 의견이라 본 것이다. 하버마스가 보기엔 사회 불통不通을 걱정하는 사회 풍토가 이상했다. 인간은 너무나도 합리적인데 말이다!
반면, 루만<사진 위>은 사회 구성원 개개의 의견은 '사회 의견'이란 중지로 모아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체계(*루만은 체계를 사회구성체로 파악했다.)가 고유의 작동방식에 따라 굴러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개개의 의견이 뭉쳐지면 사회 의견이 된다는 하버마스의 의견에 대립각을 세운다. 하나 루만은 체계가 제멋대로 작동하기 때문에 되레 인간의 합리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어차피 체계는 서로를 이해하고자 돌아가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는 질서를 유지하고 돌아가야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가급적 서로 소통하고 타협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루만의 입장이다.
루만 이론의 권위자authority 경북대 노진철 교수(사회학)는 DJ정부 시절 입각을 제의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루만 이론은 각종 사회문제를 이론적으로 풀어내지 못하는 게 없다.
예컨대 지난 2008년 미美 쇠고기 수입 파동에 따른 촛불 시위 때 정부, 정계, 언론, 시민사회는 저마다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무지 타협과 절충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치對峙만 있을 뿐이었다. 이런 복잡한 사회현상도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이면 속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노 교수의 주장이다.
예컨대 지난 2008년 미美 쇠고기 수입 파동에 따른 촛불 시위 때 정부, 정계, 언론, 시민사회는 저마다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보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무지 타협과 절충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치對峙만 있을 뿐이었다. 이런 복잡한 사회현상도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이면 속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노 교수의 주장이다.
하나 루만의 이론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데는 요긴해도, 이렇다할 묘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다. 노 교수는 입각을 겸허히 사양했다고 한다.
"아무리 사회현상을 잘 설명하면 뭐하나, 해결책이 없는데..."
그러니까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란 게 '루만 후예자'의 생각인 것이다.
"아무리 사회현상을 잘 설명하면 뭐하나, 해결책이 없는데..."
그러니까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란 게 '루만 후예자'의 생각인 것이다.
모쪼록 이 글을 보고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좀 넓어졌으면 좋겠다. 기본을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그것이 극단으로 비친다면 곤란하다. 좌우左右, 정치 이념을 떠나 극단적 사고는 위험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별 도움이 안 된다.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슈에 따른 격쟁激爭 꼴이 초고도화되어 가는 대한민국 현주소요, 그러니 아직 우리의 합리성이 미숙하기 짝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정과 확신의 재단을 경계해야 할 까닭이다.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슈에 따른 격쟁激爭 꼴이 초고도화되어 가는 대한민국 현주소요, 그러니 아직 우리의 합리성이 미숙하기 짝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정과 확신의 재단을 경계해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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