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서울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짜장면이다. 올초에 지방으로 다닐 일이 많아서 한 2주쯤 뒤에 서울에 올라와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집앞의 중국집이었다.
내가 어릴 때 고향에는 중국집이 두 개 있었다. 나는 우리집과 지척인 대항반점을 애용했다. 짜장면 한그릇에 700원.
나는 어릴 때 주말마다 어머니를 졸라 짜장면을 시켜먹었던 기억이 있다. 짜장면은 예나 지금이나 서민음식의 대명사로 꼽히지만, 우리 고향마을에선 고급음식이기도 했다.
대부분 농사지어 자급자족하던 시절, 외식은 사치였던지라 아이들 입장에선 자장만 한그릇 먹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집이 형편이 더 나아서라기보다 회사생활을 했던 어머니는 그렇게라도 평소에 못 챙겨준 걸 챙겨주고자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금이야 옥이야 짜장면 한그릇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던 내 입맛이 변했다. 그 좋아하던 짜장면을 언제부터 멀리했는지 내 기억엔 없다.
다만 짜장면 애호가로서 추억이라면,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89년 여름, 공기업에 다니셨던 어머니께서 교육차 서울로 가셨을 때였다. 아버지와 나는 주말을 이용해 어머니를 만
나러 갔고, 아버지 친구 분은 우리 가족에게 점심을 대접하기로 했다.
"지훈이는 뭘 먹고 싶니?"
오글오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의 서울 말투로 아저씨가 물었다.
나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짜장면요."
"회는 어때?"
나는 회가 뭔지 알지 못했다. 먹어 본 적도 없고, 당시만 해도 먹을 일도 없는 음식이었다.
내가 자꾸만 짜장면을 고집하니까, 아저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짜장면집이 없으니까, 맛나는 짜장면을 먹으려면 지하철로 좀 가야 해."
그렇게 아저씨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짜장면집으로 이동했다. 장소가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강남에서 고급 일식집을 가려다가 내가 버팅기는 바람에 아주 오래된 허름한 중국집으로 향하게 됐다는 점이다.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맛나는 짜장면 한그릇에 만족하며 히죽히죽 웃으며 짜장면집에서 나왔다.
"아저씨, 잘 먹었습니다."
"그래, 짜장면이 그렇게 맛있냐?"
"네."
아버지는 아저씨를 보고 괜히 번거롭게 했다며 인사를 하자, 아저씨는 "아닙니다. 선생님. 지훈이 덕분에 점심값을 많이 아꼈네요." 하는 거였다.
나는 그때 아저씨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는 회는 정말이지 고급음식이었다. 웬만한 마음 먹고는 시민들이 먹으러 가기 부담스러운 음식이었다. 게다가 강남의 고급횟집이라면 짜장면의 몇 백 배 값은 되었을 것이다.
그 좋아하던 짜장면을 즐겼던 기억이 중고교, 대학교, 군 시절에는 딱히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나는 짜장면 애호가였던 것 같다.
그러다 회사생활하면서 이따끔씩 중국집을 찾게 되었고, 자장보다는 짬뽕을 선호했던 것 같다. 순전히 속풀이용이었다.
서울에 와서 면요리를 좋아하는 형님과 같이 있다 보니 짜장면과 짬뽕을 즐기게 되었다.
이따금 작업을 하다가 허기를 느끼면 주문하면 5000원인 짜장면을 직접 가서 먹으면 3000원인 것을 알고 운동 삼아 짜장면 한그릇 비운 것도 서울에서의 잊지못할 추억이다.
어젯밤에는 그냥 심심해서 짜장면을 먹었다. 먹고 보니 서울에서의 마지막 외식이 되었다.
고향마을에는 내가 즐겨 시켜먹던 대항반점은 상호는 유지하고 있지만, 주인은 그 세월 동안 몇 번이고 바뀌었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700원짜리 짜장면은, 막 내 앞에 놓인 3000천원짜리 짜장면에서 피어오르는 새하얀 김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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