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실사회학.com/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스토리텔링이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라굽쇼?

#스토리텔링이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라굽쇼?

 “스토리텔링이라는 건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 아닌가요?”

 얼마 전 강의에서 수강자 중 한 분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의 목소리에는 스토리텔링이 별 건가하는 약간은 가소롭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는 것 같았다.

 필자는 그 분의 단정적인 말투에 즉각 반응해주었다. 

 “그래서 제가 온 겁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번 주와 다음 주입니다. 두 시간에 걸쳐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스토리텔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간에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기실 스토리텔링 강의는 영어강의나 비즈니스 등 제 분야 멘토링 강의보다 훨씬 어렵다. 이미 상당수 사람들 머릿속에 ‘스토리텔링이란 뭐다’는 정의가 아주 가벼운, 그러나 강력한 고강도 알루미늄 작대기처럼 박혀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강의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수강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그래서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데?’하는 방법론을 어서 빨리 전수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 전문가라는 네가 내놓는 해법은 무엇인지 들어나 보겠다’는 듯 팔짱낀 채 노려보는 잘못된 데다 옳지 않은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스토리텔링이 무엇이냐’고 할 때, 그 답은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허탈한가. 정치적 수사(Rhetoric)으로 들리는 건가. 실망스러운가. 하지만 우울한 감정과 느낌일랑은 거둬들여라.  이는 필자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무엇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그 방법론을 파헤쳐본다고 우리가 하루아침에 스토리텔링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에 관한한 오늘(present)의 문제는 다름 아닌 (주지했다시피) 스토리텔링을 너무 가볍고 강력하게 인지하고 있는 나머지 스토리텔링을 쉽게 이행할 수 있다고는 믿는 그 태도에 있다.

 이는 미디어의 책임이 크다. 예컨대 ‘~를 스토리텔링 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쓴~’ 같은 표현은 어느새 상투적인 표현이 됐다. 이 맥락에서 스토리텔링을 이해하면 정말이지 수강자가 말한 대로 스토리텔링이란 게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가 이해하기에도 숱한 미디어가 응당 ‘이게 스토리텔링이다’는 식으로 당연하게 문맥에 끼어 넣어 사용하는 그 ‘스토리텔링’은 인위적이고, 조작적이고, 가공한 이야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미디어가 스토리텔링을 이용(하고 인용)할 때, ‘스토리’와 동의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마치 같은 단어를 두 번 쓰면 좋은 글이 못 된다는 불문율을 의식한 듯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쓴~’은 다음 줄에서 곧잘 ‘스토리로 엮은~’이라고 표현된다. 

 한편 스토리텔링과 이야기 그리고 스토리와 이야기는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없다. 좋은 우리말 ‘이야기’를 놓아두고 구태여 ‘스토리’라고 표현한다. 스토리텔링과 스토리를 동의어로 사용하는 미디어 종사자들과 구분 못하는 스토리텔링 애호가들에게는 궁색한 합리화 방식이겠지만, 스토리를 우리말 ‘이야기’로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은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저 유명한 미래학자 롤프 옌센 같은 이가 기껏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자고 스토리텔링을 주제로『드림소사이어티』같은 책을 부러 세상에 내놓았겠나. 그렇지 않다. 작금의 스토리텔링 인식을 보노라면 롤프 옌센도 오해의 소지의 말을 남기긴 했다.  그는『드림소사이어티』에서 “미래사회 최고의 리더leader는 바로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사람일 것”이라면서 “문화적 전통이나 신화 그리고 유명 인물 등의 소재를 ‘이야기’로 변형시키고 활용할 줄 아는 도시는 스토리텔링 도시Stroytelling Town”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이걸 우리 편한 대로 “재미있는 이야기 만드는 게 스토리텔링이다”라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곤란한 이유는 이렇다.  

 우선 가장 쉬운 접근법으로,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렇게나 없었나. 아니지 않나. 스토리텔링이 인구에 회자되기 전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넘쳐났다.

 둘째, 재미있는 이야기는 글로 써서 만들어야 하나, 입으로 내뱉으면서 만들어야 하나. 그리고 만든 이야기는 저절로 (롤프 옌센이 예언한 것처럼) 돈이 되나. 안 된다.

 셋째, 스토리텔링을 굴뚝 없는 산업, 새로운 세기 문화 산업의 첨병이라고 추켜세우면서도 ‘옛날이야기 묶음집’정도를 내놓고 “스토리텔링 했다”고 하는 건 납득될 만한 일인가. 아니다.

 그러니까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스토리텔링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가 아니고, 뉘 집 강아지 이름마냥 아무 데나 불러쌓고 붙여 쓸 만큼 하찮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스토리텔링이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 정도로 인식되어도 무방한 분야가 있다. 바로 교육 분야다. 요즘 초중고교에는 ‘스토리텔링 경연대회’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때 스토리텔링은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발한 이야기,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나 그 이야기가 돈이 되어야 하는 전제는 따르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니까 기껏 교육 분야 스토리텔링을 실현하고자 하면서 관광 스토리텔링, 음식 스토리텔링,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을 운운하고 있는 모양새다. 관광, 음식, 비즈니스 스토리텔링이 지향하는 바는 ‘산업화’다. 

 경북 청도를 얘로 들어보겠다. 청도하면 소싸움의 고장, 복숭아의 고장, 감의 고장 등이 연상된다. 여기에 새천년 들어 ‘새마을운동발상지의 고장’이라는 게 하나 더 추가됐다. 청도군은 이 새로운 상징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청도로 오가는 고속도로 구간, 국도 구간 곳곳에 ‘새마을운동발상지’를 강조하는 입간판을 세워놓았다. 소싸움 간판을 교체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청도군으로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청도군은 2012년말, 새마을운동발상지 스토리텔링을 감행한다. 이름 하여 ‘청도 새마을운동발상지 신도마을 스토리텔링’. 

 ‘새마을운동발상지 신도마을 스토리텔링’은 스토리텔링 카테고리로 나눠보면 역사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겠다. 새마을운동이 있은 지 40년이 넘었고, 그동안 새마을운동사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던 탓에 역사를 복원하고, 주민들의 기억을 일깨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상을 바꾼 43일-새마을운동발상지 청도 신도마을 이야기’는 올초 세상에 공개됐다.

 청도군이 이것으로 ‘스토리텔링 했다’고 종언했다면 참으로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청도군은 이 이야기를 활용해 새마을운동 실천지도자 양성과정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또 이 이야기를 활용해 초등학생용 애니메이션과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이다. 뿐만 아니다. 청도군은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연극을 만들어 우리 국민들에게 그리고 새마을운동을 배우려는 세계인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이야기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로 청도군이 궁극적으로 달성하려는 목표는 하나다. 바로 (주지했다시피) 산업화다. 새마을운동발상지라는 테마로 지역 경제에 힘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청도군은 이와 함께 관광 인프라를 신도마을 곳곳에 구축하고 있다. 

 우리는 스토리텔링의 방점을 잘못 찍고 있다. 롤프 옌센이 의도한 바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이다. 청도군이 하듯이 이야기 집을 만들고, 그것으로 교육을 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연극을 만들고, 동시에 인프라를 구축하는 행위 모두를 아울러 ‘스토리텔링 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도 전제는 있다. ‘많은 사람이 몰려와 굴뚝 없는 산업으로 천문학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라는. 

 청도군이 스토리텔링 해나가는 과정에는 보태질 것으로 기대되는 몇 가지가 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캐릭터 상품과 1970년대 농기구 판매상, 현장체험학습장 그리고 미흡하나마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게 짜여진 ‘새마을운동발상지사(사회학적 시각이 버무려진 역사서)’ 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스토리텔링이 재미있는 이야기 만들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새마을운동이 단순히 동네길 넓힌 운동인가요? 새마을운동이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실로 다양한 일들이 새마을운동이란 명찰을 차고 서 있지요.”

 또 ‘스토리텔링전문가가 뭐예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하나의 이야기 콘텐츠가 산업화되는 프로세스 전반을 컨트롤하고 현실화하는 사람입니다.” 


/스토리텔링Pro. 심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