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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사회학.com/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특별한 강의

‎#특별한 강의

개인적인 강의사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대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대학생도 대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는 역발상으로 학내에 영어강좌를 개설했다. 내가 무슨 영어를 대단히 잘해서 벌인 일은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왔는데, 학교가 절간처럼 조용했다. 학생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많던 도서관에서 열공하던 학생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사연은 이랬다. 내가 군대를 간 사이 교명이 바뀌었는데, 이 과정에서 학교 당국과 학생(그리고 일부 교수)이 거세게 맞붙었다. 그 홍역을 치르고 나서 많은 학생들이 이 학교에는 희망이 없다고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그게 이해가 안 됐다. 교명을 지키는 것이 재학생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지 나는 잘 납득이 안 갔다. 

학생들의 논리는 교명이 바뀌면 취업하기가 힘들고, 정통성이 무너진다는 거였다. 과연 그럴까. 교명이 바뀌면 재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새 역사를 쓰면 될 일이고, 정통성도 그렇게 살려주면 될 일 아닌가. 당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절간 같이 조용한 학교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다. 

교명이 바뀌었다고 제 삶을 송두리째 집어던지고, 자신의 삶에 사보타주를 거는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나는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학생이 없는 학교는 죽은 학교이니, 다시 제 위치로 돌아가 달라고 주문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정통성을 운운할 자격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명분이요, 바탕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삶을 그렇게 쉽게 단정하고, 방기하는 건 청춘답지 못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학생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영어강좌를 개설한 거였다. 첫해에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학생들의 관심은 생각보다 컸다. 가르치는 이가 누군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50명의 수강생은 점점 열의를 잃어갔다. 마지막까지 함께 간 사람은 7명. 모두가 기숙사생이었다.

이듬해 나는 기숙사 사감장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사감장과 단판내기를 했다. 수강생 10명을 모으면 공간을 내주겠다는 것이다. 사감장이 보기에는 이미 영어장학생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별도의 동에서 생활하고 있고, 다른 학생들은 별로 영어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사감장의 오판이었다. 

나는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게 된 동생 3명과 저녁시간에 맞추어 전단지 100장을 나눠 뿌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방 전화통은 불이 났다. 내가 영어강좌 첫해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미 나의 영어강좌는 교내에 소문이 퍼질만큼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숙사로 들어온 나의 영어강좌에 대한 기숙사생들의 관심은 기대 이상이었다. 

당시로선 생소했던 공개강좌를 내걸고 '들어보고 배울만한 가치가 있겠다' 싶으면 들어보라고 배짱을 내었다. 사감장과 기숙사 관계자들은 공개강의가 있던 날, 기숙사생들에게 대단히 미안함을 느껴야했다. 40명 들어갈 수 있는 다용도실에 200명 가까이 몰린 거였다. 앉지 못한 학생들은 서서 듣고, 교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복도에서 들었다. 

그렇게 해서 최종 163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나는 9시 첫 강의 전에 강의를 끝내는 오전 1시간 타임을 구상했지만, 한꺼번에 수강할 강의실도 없는 데다, 이 숱한 강의생들이 오전 오후로 수강 희망이 갈리면서 나는 졸지에 오전 7~8시 반과 오후 5~6시 반으로 나누어야 했다. 

이 사건은 금세 총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총장은 학생처장을 시켜 내게 '원하는 무엇이든 지원해 주라'고 특명을 내렸다. 1년간 보람된 시간을 보냈다. 영어 외에 청춘이 가져야 할 사명 같은 것도 많이 공유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 내 소임을 마쳐야 했다. 나의 꿈은 영어 강사가 아니라 기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기자가 되어서도 대중 앞에 설 기회가 더러 있었다. 특히 스토리텔링연구원 담당자로 있으면서는 제 값을 받고 대중강의를 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전문가로 살아가는 요즘은 강의에 목말라 있다. 강의와 저술활동은 내가 살아가는 밑천이다. 

사설이 대단히 길었지만, 대학생 그 열정으로 똘똘뭉친 그 시절의 강의를 제외하고는 강의를 하면서 희열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지난달 24일과 이달 1일 강의에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짜릿함을 느꼈다. 강사의 열정은 훌륭한 수강생 덕에도 불붙는다. 

평균연령 65세. 아버님 뻘 되시는 어르신들 앞에서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시대를 내 깜냥으로 공부하고 쓴 이야기 책을 들고 이야기했는데, 어찌나 귀를 쫑긋하고 들어주시는 지, 궁금한 것에 대해선 또 어찌나 디테일하게 물어오시는지, 강의가 끝나고선 어찌나 정중하게 인사를 해주시는지...

요즘 대중강의는 수요자의 입맛을 맞추느라 강사의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분위기를 봐가며, 그저 우스개로 반을 채워야 하는 상황은 코미디 같다. 배우겠다고 오는 사람들보다, 평가를 하겠다고 오는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더 많다. 그러니 자세가 된 수강생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복이 강사들에게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내 강의를 경청하고 하나라도 더 배워가겠다는 단체, 조직이 있다면 공짜라도 좋다고. 단 스토리텔링에 한해서.


2013년 7월 4일

스토리텔링Pro. 심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