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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사회학.com/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내가 이상한 건가?



# 이런 내가 이상한 건가?
누군가는 나를 향해 "그래 네가 이상한 거야"라고 단정할지도 모르겠다. 

오늘자(2012년 11월 21일) 중앙일보 '외환위기 15년, 서민만 무너졌다' 시리즈 <하>편을 보다가 우리 가족도 신문이 분석하는 세 세대-베이붐세대(1963~55년생), IMF세대(1977~69년생), 삼포세대(1987~79년생)-에 속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기사의 세대 분류에 따르면 나는 삼포세대고, 형님과 누님은 IMF세대다. 부모님은 베이붐 윗세대에 속하지만 어머님은 IMF로 30년 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해야 했다. 기사는 세대마다 상황인식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피해를 봤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내가 속한 삼포세대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데 이 세대는 10대 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취업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해졌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형님과 누님이 속한 IMF세대는 취업할 시기에 일자리가 없어 사회로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세대로 평가한다. 더 나아가 전문가 의견을 통해 이 세대는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아 보지 못한 세대"라고까지 못 박는다.

베이붐세대는 IMF로 한 번 자빠지고, 살아남은 사람이나 변변치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나 이제 나이 때문에 또 한 번 '생존전쟁'을 치를 때가 됐다고 전망한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삼포세대인 나는 대학졸업과 동시에 신문사에 합격해 직장을 얻었고, 제 발로 신문사를 박차고 나온 뒤에야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꿈꾸고 있다.

형님은 취업할 시기에 외시공부에 전념했다 실패를 인정하고 33세에 월 70만원 받는 영어강사로 시작해 2년 만에 자기 학원을 일으켜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집에서 돈 한 푼 보태준 적이 없다.

누님 역시 취업 보다는 대학원으로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지금은 대구로, 부산으로, 대전으로 열심히 강의를 다니고 있다.

우리집은 내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 유지로 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동네에서 옥상 양옥집은 우리집이 처음이었고, 우리집이 가장 높았다. 어머니는 34년 전, 내가 태어나던 해 은행에서 180만원을 융자받아 옥상 양옥집을 지은 뒤 20년 상환으로 갚아나간 것에 대해 '아주 지긋지긋했다'고 회고하시지만, 아무튼 어머니가 IMF로 퇴직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캐다나 여행을 세 번, 형은 중국 유학을 두 번, 나는 캐나다 연수 한 번과 스페인 여행을 각각 한 번씩 다녀왔다. 

지금은 부모님은 연금과 자식들 용돈으로 생활하시고, 나만 밥줄에 연연하는 처지에 있다. 그렇지만 나도 올해부터 일감이 조금씩 생겨 글을 쓰고, 공부를 한다. 내년에는 더 큰일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오늘 이 기사를 보면서 참 나쁜 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시대는 일꾼의 전범으로 멀티플레이어를 원하고 있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직업의 개념보다 직장의 개념을 상위에 놓고, 돈 많이 주는 직장이 최고인 듯한 풍토가 저변에 깔려 있다. 대한민국 취업준비생들의 목표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은행원으로 집중돼 있다. 이 직장만이 좋은 직장이라고 보는 사회적 시각이 그들의 목표를 실상은 적성에 맞기나 한 것인지, 좋아는 하는 일이긴 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지도 않은 채 결정하고, 무조건 질주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경쟁률이 높으니 관문을 뚫을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남들이 선호해서 자신이 선호하게 된 직장을 들어가고 보면 별개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적성에 맞지 않아 하루하루가 지옥인 직장을 다니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편하고, 돈 많이 준다는 공기업의 이직률이 해마다 높아지는 것도, 대기업 사원들의 철새행각도 따지고 보면 줏대 없이 선택한(혹은 선택된) 비극이 아니랄 수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유래 없던 외환위기를 겪은 통에 살기가 어렵고, 취업이 어렵다는 것은 일면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대다수의 삼포세대와 IMF세대 그리고 베이붐세대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본다. 

그것보다 우리는 직장이란 울타리를 어떤 방식으로든 떠나기만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애비라도 힘이 빠지게 되고, 무능력자가 된다. 이건 단순히 보면 "그래, 그래서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것보다 우리에게 태부족한 것은 직업(직장이 아닌)에 관한 프로 정신이 무척 빈약한데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부터 조직에 기댐으로써 혼자서 설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다.

조직은 절대 잘난 사람을 등용해 쓰지 않는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을 뽑아 쓸 뿐이다. 그런데 직장에서 일 좀 한다는 사람은 자만에 빠져 퇴직 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일 못하는 사람은 여기서 나가면 죽는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비굴하고, 비참하게 연명해 살아간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조직에 있을 필요가 없다. 자기가 자기 힘으로 자기 일을 일굴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유능한 사람이다. 우리사회는 유능한 사람도 무능한 사람으로 만드는 아주 용한 재주를 가졌다. 

곰곰이 차 한 잔 마주하고 앉고 자신에게 물어봐라.
“내가 이 직장을 떠나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대부분 막막할 것이다. 우리사회는 100세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무원 퇴직연령을 잡아도 우리는 20년을 더 돈을 벌어야 한다. 사회적으로 좋다는 직장에서 돈 좀 번다고, 일 잘한다고 인정받는다고 우쭐될 일이 아니다. 

당신의 든든한 울타리가 더 이상 당신을 보호해주지 않을 때 ‘아차!’할 때는 이미 늦었다. 내가 베이붐세대의 삶까지 아는 척 하는 건 건방진 일이고, 삼포세대이기에 절망하고, IMF세대이기에 절망만 하고 있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런 기사는 쓰레기 기사일 뿐이고, 귀하가 절망할 시간에도 귀하와 같은 세대의 팔팔한 청춘들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연구하고, 그 답을 찾았다면 고속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하니 절망의 늪에서 나와 나는 무슨 업을 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라. 우리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야야, 웃어도 하루가 가고, 울어도 하루가 간다.’ 힘 있을 때 뛰어라.”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부러워할 대상은 없다. 다만 귀하가 부러움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잘 살고, 못 사는 건 죽을 때 딱 한 번, 최종평가면 족하다. 우리네 삶에서 중간평가는 무의미하다. 
이런 내가 이상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