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궁리

#궁리
요즘 어머니는 일일드라마 <잘 키운 딸 하나>에 폭 빠져 사신다. 드라마 전개가 타이트한 긴장감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것 같다. 나도 어느새 <잘 키운 딸 하나>의 열혈시청자가 되어버렸다. 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전개성을 띤 장르는 죄다 적대적 갈등 관계로 얼개가 짜여진다. 그것이 더 현실 같거나 아니면 그냥 드라마 같거나 상관없이 예부터 남의집 싸움은 불구경만큼 재미나다고 했다.
오늘은 황소간장 후계자를 놓고 은성(본처 소생)이와 라공(후처 소생)이가 치른 1차 시험 성적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라공이 엄마는 라공이가 반드시 황소간장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릇된 사명으로, 시험결과를 미리 확인하고 2차 시험을 대비하도록 작전을 짰다. 그 과정에서 늘 그랬듯이 라공이 외할머니는 라공 엄마의 책사 역할을 하며 악역의 주춧돌을 놓는다. 
오늘 라공 엄마가 시아버지 몰래 시험결과를 확인할 방법을 라공 외할머니에게 채근하자, 라공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궁리하고 있잖니."
궁리는 곰곰히 생각해 본다는 뜻이다. 요즘은 궁리를 너무 안해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역지사지의 끈이 대단히 짧아졌다. 모든 걸 제 편의대로 해석하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관성화, 고착화되어버렸다. 
궁리는 문제의 해결책을 장고하는 일종의 도구다. 그런데 좋은 약도 나쁘게 쓰면 독약이듯 라공 외할머니처럼 궁리를 옳지 못한 데 쓰면 꼼수가 된다. 꼼수는 통하는 듯해도 곧 불통임이 드러난다.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가 그것을 방증한다. 한때 이 프로그램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나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논하면서 옳케 궁리했다면 지금까지 장수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꼼수로 꼼수를 부리니 그저 꼼수로 끝난 것이다.
궁리가 필요한 시대다.

/작가 심보통 201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