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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나라미 부당거래 사건

#나라미 부당거래 사건

며칠 전 '나라미(정부가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쌀)'가 인터넷 장터에서, 실생활에서 공공연히 부당거래 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서 후속조치를 취하기로 했다는 후속보도도 나왔다. 부당거래의 주범은 다름 아닌 소수의 기초생활수급자들. 자력으로 먹고 살기 힘든 이들을 선별해 국가가 무상으로 쌀을 공급해 주었더니, 기초수급자들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게 뉴스(=새 소식)였다. 법적으로 나라미를 되파는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의 무식용감한 네티즌들은 와글와글 키보드를 두드려 성토하기 시작했다. 언론은 얼씨구나 좋다 하고 그걸 받아다가 후속보도하는 데 양념처럼 첨가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는 나라법 위에 정서법이란 게 있어 왔다. 정서법은 지위의 고하, 부자와 빈자를 막론하고 걸렸다 하면 사정없이 철퇴를 휘두르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판단하니 용서과 관용의 틈이 있을 수 없다. 

나라미는 조선시대 같으면 휼량(恤糧)쯤 될 것이다. 휼량은 변고가 생기면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나라에서 대주는 곡식을 말한다. 농사 지을 땅도, 갖고 있던 눈물겨운 세간살이도 작살이 났으니 민초는 제 밥벌이 할 수단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휼량을 갖고 식솔 연명시키는 데 올인해야 했다. 그래서 일까. 휼량을 갖고 음흉하게 장난질을 했다는 백성의 기록은 여태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조선 후기에는 고관대작들의 휼량 장난이 그 도를 넘어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헌종 12년(1846), 기생 출신의 아녀자 초월이 임금에게 나라쌀 갖고 장난 치는 관료를 고발하는 상소를 다 올렸겠는가. 초월은 "근년에는 흉년이 들면 환곡을 곡식으로 주지 않고 한 섬에 한 냥 서 돈씩 돈으로 내어 주는데, 면임(面任.하직 공무원)이 미리 수수료로 떼어 가고, 창고지기가 축난 것을 채운다고 제하고, 방장(坊長) 풍헌(風憲.하직 공무원) 따위가 교제비라 해서 제각기 떼어 가고, 그 나머지는 왕래 여비 잡비 술값 밥값으로 다 날리니 환곡(還穀)을 타러 갔던 이는 거의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실정이옵니다"고 하소했다.

물론 옛 휼량과 오늘날 나라미를 절대 비교하는 건 코미디다. 또 은밀히 말해 환곡과 나라미는 다른 차원의 지원 쌀이다. 하지만 나라미 부당거래로 마른 하늘 아래 똥물 뒤집어 쓴 선량한 기초수급자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기초수급자들 중 인터넷장터를 이용할 줄 아는 이들이 대체 몇 %나 될까. 질(質)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쌀과 다를 바 없지만 2만원으로 책정돼 시중미(6만원)보다 1만원 더 얹어 되파는 것이 그렇게 중죄일까. 가난한 자들을 돌본다는 미명 아래 정작 필요한 지원은 않고 무턱대고 쌀을 넣어주다 보니, 안 그래도 좁은 집에 켜켜이 쌓여가는 쌀포대를 대체 어쩌란 말인가. 쌀을 돈으로 바꿔 집의 부피를 줄이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서 썼다면, 이는 현명한 소비를 한 것이다. 기초수급자를 두드릴 시간에 차라리 멍텅구리 법에 메스를 되면 안 되었을 것인가. 

반대로 나라미의 인터넷거래가 공공연한 비밀이었음을 동네반장은, 동장은, 구청은, 시.도는, 보건복지부는, 청와대는 진정으로 몰랐을까. 만천하에 공개된 이 부당거래를 몰랐다면, 온 나라의 직무유기다. 비판받아 마땅한 자들은 기초수급자가 아니라 관료들이다. 부끄러워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어디 후려칠 데가 없어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기초수급자들을 후려치는가.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작가. 심보통201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