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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공시생 100만 명 시대...절망의 시대

#시선-공시생 100만 명 시대...절망의 시대

불안해 하는 시선들이 있다. 내가 최근 새로 얻은 알자리에 대해 말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어떤 한계점을 뛰어넘지 못하거나 달리 보는 시야 폭이 좁은 게 맞다. 


보통 우리는 일자리라 하면 시험(공채)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걸 넘어 그게 옳다고 본다. 둘째는 정식 출퇴근을 해야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이야기하면 그 일의 가치가 낮거나 형편없을 것이라는 큰 착각을 한다. 이것이 범인들의 눈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관공서, 대기업, 공사 정도에서 일한다고 하면 일단 '우와~'해 준다. 전문성을 갖고 어떤 이가 새롭게 개척하거나 개척하려는 직업을 이야기하면 '그래...'정도의 반응을 할 뿐이다. 우리 사회는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디에 다니느냐에 더 관심이 많다. 직업보다 직장 개념을 상위에 올려놓고 평가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나라 운영 체계는 누구나 아는 직장이 전부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협력사와 협력자가 사회 곳곳에 넘쳐난다. 또 사회의 잣대와는 무관하게 인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 그들 모두가 인류라는 바퀴를 각자의 자리에서 굴리고 있는 것이다. 

나도 첫 직장은 공채라는 시험 관문을 통해 얻었었다. 그리고 출퇴근 시간이 있었고, 누구나 아는 직장이었고, 직업이었다.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 우리는 왜 이런 비능률, 비효율 속에서 일해야 하는 걸까라는 회의가 들었다.

조직은 비대할수록 능률과 효율이 떨어진다. 조직원 모두가 자신이 속한 조직이 자신의 것인 양 생각하고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충성도가 높은 자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조직은 이론상 경쟁체제를 통해 인센티브와 보상과 인사를 단행하고, 이를 통해 능률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 시대 조직은 과다경쟁으로 오히려 그 폐단이 더 크다. 죽을 힘을 다해도 누군가는 대가를 받고 누군가는 대가를 못 받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그 조직에는 관성적으로 부지런한 개미보다 게으른 배짱이가 더 많아진다. 

똑똑한 자든, 그렇지 않은 자든 조직을 이탈하고 이직하는 횟수가 과거보다 많아진 것은 제 일터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회의가 들어서 일 것이다. 나는 이번 일자리를 철저히 내 조건에 맞추어 얻어냈다.

급여 수준을 내가 정했고, 근무조건도 내가 정했다. 물론 상대가 내 일의 방식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어쨌든 내 신상변화에 축하를 해주는 이들의 의아스러움은 일의 방식과 조건이 생경하다는 데서 온 듯하다.

20세기는 직장생활 20년, 아니 평생을 조직을 위해 충성해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무덤으로 향하는 시대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20세기의 틀에 갇혀 있다. 고정된 틀 속(직장)으로 들어가기만을 애쓰기 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직업)을 개척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 인류를 위해 더 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공시족이 100만 명이라는데, 나는 그 많은 청춘들이 이 아까운 시간을 기껏 공무원이나 되려고 낭비하는 게 말이 되나 싶다. 그 노력으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매진하면 훨씬 더 빨리 성취라는 쾌감을 맛볼 것인데 말이다.

유사 이래 역사는 쓰겠다는 자의 몫이었음을 우리는 알고나 살아야 한다. 처음부터 '위인'은 없었다. 그렇다고 위인들이 위인이 되겠다고 산 것도 아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 찾아 미친 듯이 하다 보니 위인이 된 것이다.

대학씩이나 나온 자들이 틀을 깰 생각은 않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것은 이 시대가 절망적이라는 것 다름 아니다. 본질은 치열한 관문 통과가 아니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시에 몰린 답답한 청춘들이요, 그 길을 독려한 못나고, 못된 어른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작가 심보통 2014.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