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자'의 취재일기
오랜만에 현장취재를 다녀왔다. 내 인생이 '반기자(반만 기자)'로 흘러갈 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을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고, 좋다고만 할 수도 없다. 인생 2막을 살겠다고 신문사를 박차고 나왔으면, 그것으로 신문사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려는 2막 인생이 신문사와 손잡으면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일이다. 용케 내 재주와 신문사의 장점을 합하면 윈윈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분을 만났다. 한국일보 유명상 대구경북취재본부장이다. 그래서 함께 일하기로 했다. 나는 스토리텔링 사업(기획부터 기사연재까지)만 담당하기로 하고, 일반 취재는 않기로 합의했다. 그렇지만 한 배를 탄 이상 필요하다면 배운 재주를 용케 써 먹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세상사는 이치다. 지난 8개월 동안 내가 한 일은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및 기획 그리고 필요한 인물 인터뷰를 지면에 싣는 거였다. 나는 내 공부를 게을리지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게, 그리고 신문사에 도움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엊그제 유 본부장께서 전화가 와 문경 취재를 다녀올 수 있겠냐고 했다. 서울 본지 데뷔를 하라는 것이다. 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본지 데뷔에 혹해서 한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아 하기로 한 거였다. 한국일보는 지난 7월 페이지내이션을 하고 몇 가지 기획물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 <신한국견문록>' 문경편을 유 본부장은 내게 맡겼다. 마음껏 취재해 올려보라고 해서 정말이지 내 마음대로 취재를 했다. 최근에 문경시 가은읍에 '잉카마야박물관'이라는 이색 박물관이 개관했다. '관광도시 문경'에 포인트를 두고, 문경의 문화와 역사를 흘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컷 취재하고 돌아왔더니, 아뿔싸! 서울 본사와 아이템을 조율해야 하는 거였다. 본사 담당자는 내게 문경새재를 다뤄주길 원했다. "서울사람들은 문경새재를 잘 모른다"고 했다. 순간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나는 '누구나 다 아는' 문경새재, 골백번도 더 다뤘을 문경새재를 또 다루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아무튼 본사 담당자의 생각은 일면 이해가 가면서도 기사 아이템의 폭을 너무 좁게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했다. 잉카마야박물관을 이야기하면서는 문경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들면 이상한 것인가. 아니, 안되는 것인가. 아직 마감시간이 하루 더 남아 필요하다면 다시 문경새재를 취재해 원고를 작성하면 될 일이었다. 일단 취재해 온 것을 <신한국견문록>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작성했다. 그리고 그걸 밤중에 본사 담당자에게 메일로 보냈다. '일단 기사를 검토하고, 그래도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시면 문경새재를 쓰겠다'고 내 의사를 전했다. 본사 담당자는 바로 기사를 확인했고, 시리즈 성격과는 좀 안 맞지만, 원고는 살리는 게 좋겠다며 여행면에서 소화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담당자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문경새재를 주제로 다시 써 보내겠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다시 문경으로 향했다. 앉아서도 쓸 수 있지만, 독자밥상에 올리는 기사를 그리 무성의하게 다루면 그건 기자는 물론이요 글쟁이로서 근본 자세가 틀려 먹은 것이다. 글쟁이는 무조건 현장을 확인하러 가야 한다. 문경새재관리사무소에 도착해 취재를 시작하려 하자,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문경 취재는 안 해도 좋겠다고 했다. 내 기사는 여행면으로 가고, <신한국견문록>은 다른 기사로 대체하기로 했단다. 문경새재에 왔다고 하니, 담당자가 조금 당황해하는 듯했다. 잠깐 망설이더니 그러면 여행면을 두 개 면으로 늘릴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곧 두 개 면을 쓸테니, 6~7매짜리 기사를 하나 더 써 달라고 했다. 문경새재 취재는 무사히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유 본부장과 통화했다. 본부장은 축하한다고 했다. 본지 마수를 화려하게 장식해 기쁘다고 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만 '반기자'로 흘러갈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사람은 자고로, 일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야 한다. 끝장을 본 결과가 드러나는 때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나는 내 지적작업이 10년 후면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신문밥을 먹는 이상 이제 '스토리텔링전문가 심지훈'과 '기자 심지훈' 사이에서 팽팽한 기싸움을 벌여야 할 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신문기자의 옷을 입고 내 갈 길을 묵묵히 갈 것이다. 고맙게도 본부장도 그걸 원했다. 문경 잉카마야박물관과 문경새재 기사는 내일자(14일)에 실릴 예정이다.
/심지훈201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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