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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에서 본 한양

[심지훈 문화칼럼] 직지사 문인송과 과업



#문인송과 과업

우리 동네 뒷산에는 수령 400년이 넘은 아주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는 이 소나무는 한낱 소나무에 지나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문인송'이라고 지어준 뒤에야 이 소나무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문인송이라고 이름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소나무를 중심으로 직선거리 100m 이내에 세 분의 문인이 나셨기 때문이다.
김천 최초 등단 시인 홍성문 교수(영남대 미대학장 역임), 김천인 최초로 시집 발간한 故 이정기 교수(국민대 국문과 교수), 김천 최초로 등단한 소설가 故 심형준 선생(아버지)이다.
아버지께서는 생전에 미물도 함부러 다루면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셨다.
아버지 유작 중에는 <꽃 찬미>라는 시가 있다. 이 시를 돌아가신 뒤 발견하고 보니, 아버지가 참 달리 보였다. 아버지는 아주 높다란 산이었고, 언제나 조심스러워야 할 대상이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화분을 깬다든지 하면 곧잘 대노하셨는데, 아버지야말로 순수하신 분이 아니었을까, 지금와 생각해 본다. 
 
꽃 찬미

황계 심 형 준/소설가
 
땅바닥에
초라하게 떨어져 깔렸다고
함부로 밟지 마라
떨어진 꽃이라고
어찌 꽃이 아니겠느냐
온통 눈길 빼앗기고
설레는 가슴으로 다가가
코 박고 흡흡대던
그 때를 기억해 보라
어느 순간의
그 큰 기쁨
그 대단한 감동
벌써 잊었느냐
제 몫 다하고
장렬히 산화한 꽃이다
쓰레받기에 아무렇게나
쓸어 담지 마라
흰 장갑 정결히 낀 손으로
그 잔해 지성껏 거두어
살 좋은 땅속에
고이 묻어 주는 게
도리 아니겠느냐
그 생애
역사 속에 고요히 잠들게 하라
그 향기
오래도록 전설로 남게 하라
그 이름 결코 헛되이 하지 말라
떨어진 꽃이라고
함부로 하지 마라
낙화도 꽃이니라
꽃이니라… 
 
이제 나는 아버지께서 미완으로 남기고 간 이 '문인송'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아니, 이제 진짜 아버지께서 꿈꾸셨던 일을 잘 받들어 실행에 옮기려 한다. 문인송 하나로 우리 마을이 먹고 사는 시대를 아버지는 예견하셨다. 나는 그걸 현실로 만들어낼 것이다.

/심지훈 201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