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발상지 스토리텔링과 그 전망
내가 스토리텔링과 인연이 닿은 것은 햇수로 6년째다. 한창 사회부 기자로 현장을 누비고 있을 때, 사장의 호출이 있었다. 신설되는 스토리텔링연구원에 가서 일 좀 하라는 령이었다. 사장실엔 나와 친분(?) 있는 지역 인사와 안면이 익은 다른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사장의 '인사 조치'였지만, 그 앞에서 못 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외부인의 눈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스토리텔링 전담기자가 됐다. 딱 1년 하고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그 때 진 마음의 빚 때문에 지금까지 스토리텔링을 부여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준비가 안 된 나에게 스토리텔링은 좀 짜증스러운 분야였다. 2010년만 하더라도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창구가 부족했다. 특히나 지역에서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서점으로 갔다. '스토리텔링'이 붙여진 책은 모조리 사왔다. 읽어보니 마땅찮았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소설작법과 다를 바 없었다. 스토리텔링은 소설 쓰기의 아류쯤으로 이해됐다. 난감했다.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으니, 회사에서 요구하는 스토리텔링 기사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안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 조대로 썼다. 이것이 내 짧은 기자생활의 유일한 빚이다. 팩트를 쫓는 기자가 '만들어진 이야기를' 써야 했기에 한동안 '기자 양심'에 시달렸다. 기사와 스토리텔링이 같을 수 없다는 압박감이 '내멋대로 기사'를 양산토록 했던 것이다. 나는 그게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기자로서 범한 유일한 죄요, 글쟁이로서 살아가면서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스토리텔링을 완성할 때, 내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스토리텔링에 대해 소위 감을 잡은 것은 회사를 퇴직하고 스토리텔링 이론서를 쓰겠다고 준비하면서고, 또 실제 쓰면서였다. 남의 논리 말고, 내 논리(짧지만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로 스토리텔링 구현하는 방법을 정리하고, 또 고안하면서 '이렇게 가야 한다'고 비로소 정립할 수 있었다. 스토리텔링의 궁극적 목표는 적재적소에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수익창출은 그 다음이다. 적재적소에 이야기를 활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널리 공유하는 데만 있지 않다. 목표한 바를 사람들에게 인지시키고, 인지한 사람들이 이웃에게 동료에게 전달하는 것까지다. 그것은 산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세상을 바꾼 43-새마을운동발상지 신도마을 이야기> 만화버전이 나왔다. 원작은 동명의 스토리텔링집이다. 2013년 영남대학교 새마을연구센터의 의뢰를 받아 이야기를 지었다. 이것을 기획할 당시, 센터 측 연구교수님과 청사진을 그려 보았다. 스토리텔링은 단기레이스여선 안 된다. 장기레이스여야 한다. 이야기 특성상 국내보다 해외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여태 갑론을박이 많지만, 새마을운동발상지만큼은 이론이 있을 수 없는 분야다. 말 그대로 민중이 쓴 역사고, 그 역사를 박정희 정부가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새마을운동발상지 이야기는 망각의 역사를 새마을운동이 있은 지 43년 만에 소환하는 일이었다. 나는 유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여러 날 고민해서 새마을운동발상지 스토리텔링 프로세스를 연구원에 전달했다. 나는 기자의 보폭으로 빠르게 자료를 모았고, 기자의 독법으로 자료를 빠르게 헤쳐나갔다. 이야기를 설계하고, 교수진들의 자문회의를 거쳐 집필에 착수했다. 두 달 만에 <세상을 바꾼 43-새마을운동발상지 신도마을 이야기>를 끝마쳤다. 나는 이야기집으로 끝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영문을 만들고, 해외공관에 뿌릴 구상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 수요를 디테일하게 나눠서 접근하라 했다. 어른용, 아이용, 유아용을 별도로 가공해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세계 언어로 번역해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히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3년이 흘렀다. 새마을연구센터는 지속가능한 스토리텔링 사업을 잘 이끌어나가고 있다. 2013년 원작을 시작으로 2014년엔 영어버전이, 2015년엔 만화 한글버전이 나왔다. 연내 만화 영어버전도 출간 된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각국 언어로 번역될 예정이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새마을운동발상지 카툰도 제작돼 지역 초등학생들에게 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 사이 신도마을 현장 팸플릿도 원작을 활용해 어른용, 어린이용, 외국인용으로 세분화했다. 대형 스토리보드도 설치해 뒀다.
새마을운동발상지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좁게는 신도마을 주민들의 새마을운동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역사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넓게는 3세계 국가들에게 신도마을 주민들과 같은 역사의 새 장을 쓰는 주역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산업화를 일군 대한민국의 경험을 전수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나는 <43일...>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새마을운동발상지에 관한 논문(석사)도 썼다. 문화의 시대 새마을운동 뿌리를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일도 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년 전 새마을연구센터 연구교수님은 무명인 내게 '밀알을 하나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밀알이 내 것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온누리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밀알은 쑥쑥 자라고 있다. 4년 뒤, 이 씨앗은 어떤 재목이 되어 있을까. <43...> 탄생 10년 주년을 기대해 본다. 그때는 두툼한 새마을운동발상지 대중서도 두루 읽힐 수 있게 되기를...
/심지훈 2015.11.14
'마실에서 본 한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지훈 문화칼럼] 그리움, 사무침 (0) | 2016.02.27 |
---|---|
[심지훈 문화칼럼] '어른'이 없다는 사회 (0) | 2016.02.20 |
[심지훈 문화칼럼] 동학 전쟁, 역사 전쟁 (0) | 2015.11.07 |
[심지훈 문화칼럼] 인간 유형 네 가지 (0) | 2015.09.24 |
[나의 글쓰기 이력기] (1) | 2015.09.06 |